[이봉호의 세계명반산책] 시대를 디자인한 예술집단, 힙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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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열린 '힙노시스 : 롱 플레잉 스토리' 전시회에 다녀왔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전시회에서는 힙노시스라는 LP 디자인회사의 작품과 만날 수 있었다.
레코드 수집가에게 힙노시스란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힙노시스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모두가 이해하거나 수용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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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열린 '힙노시스 : 롱 플레잉 스토리' 전시회에 다녀왔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전시회에서는 힙노시스라는 LP 디자인회사의 작품과 만날 수 있었다. 레코드 수집가에게 힙노시스란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1970년대 대중음악을 사랑했던 이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한편 5월에는 다큐로 제작한 '힙노시스 : LP 커버의 진실'이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개봉했다. 2024년은 힙노시스를 소환하는 의미 있는 해다.
멋을 뜻하는 '힙(Hip)'과 지식을 의미하는 '그노시스(Gnosis)'를 결합한 힙노시스는 오브리 파월, 스톰 소거슨이 만든 스튜디오였다. 이들은 핑크 플로이드의 1968년작 '어 소서풀 오브 시크리츠(A Saucerful Of Secrets)'의 앨범 재킷을 담당하면서 활동을 시작한다. 핑크 플로이드는 초현실적인 음반 이미지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창조하면서 영국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자리 잡는다. 힙노시스가 알려지면서 앨범 디자인을 요청하는 록스타가 늘어났다.
르네상스, 레드 제플린,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스콜피언스, 제네시스, 10cc 등이 힙노시스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힙노시스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모두가 이해하거나 수용하지는 않았다. 음악과 관련 없는 이미지를 내세우는 힙노시스 철학을 수용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지에 그룹명을 빼자는 힙노시스와 판매실적을 우려하는 레코드사의 의견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룹 10cc의 음반을 담당한 힙노시스는 해변 의자 위에 양을 올려 놓은 이미지를 제안한다. 해당 사진이 10cc 음악과 무슨 관련이 있냐는 질문에 힙노시스는 관련이 없으면 안 되냐는 선문답으로 계약을 관철시킨다. 날씨가 쌀쌀한 영국이 아닌 하와이에서 촬영 작업을 할 정도로 힙노시스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지원받는다. 앨런 파슨스 역시 힙노시스의 역량을 인정한 인물이다.
앨런 파슨스는 비틀스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와 '렛 잇 비(Let It Be)'의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다중악기 연주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앨범 제작에 착수한다. 1976년 데뷔작을 발표한 그는 1980년까지 매년 앨범을 발표한다. 힙노시스가 디자인한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는 타이틀과 어울리는 미니멀한 앨범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는 인물사진을 차용한 과거 앨범 '피라미드(Pyramid)', '이브(Eve)'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아이 인 더 스카이가 나온 1982년은 팝의 시대였다.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이미지로 유명한 힙노시스를 찾던 레코드사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가볍고 단순한 앨범 재킷이 어울리는 팝의 특성이 높은 제작비를 투입하는 힙노시스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힙노시스에 아이 인 더 스카이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필자는 아이 인 더 스카이와 함께 새로운 출발선에 선 힙노시스를 응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르네 마그리트와 살바도르 달리의 미술품을 연상시키던 힙노시스는 1983년 해체를 발표한다. 화무십일홍. 시대를 디자인한 예술집단은 팬덤으로 무장했던 팝스타의 후반생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이뤄낸 결과물은 고스란히 대중음악사의 일부로 남았다. 힙노시스는 죽지 않는다. 다만 걸음을 멈췄을 뿐이다.
[이봉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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