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오늘의 깊은 뜻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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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매듭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계절이 매듭을 지을 때, 뜻을 정성스레 하고 마음을 바루는 건 생각하는 사람이면 응당 할 일이다.
"사람이 오늘의 뜻을 모르고 나서부터 세상의 도가 어긋났다. 어제는 이미 지났고, 내일은 아직 안 왔으니, 어떤 일을 하려 하면 오직 오늘에 있을 뿐이다." 오늘을 어제에 매어둔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붙잡혀 있다.
계절의 첫머리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면서 오늘의 깊은 뜻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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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매듭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부쩍 서늘해진 새벽 공기가 기분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먹게 한다. 9월이니까, 가을이 왔으니까, 오늘부터 삶을 다시 시동 걸 수 있어 무척 다행이다. 생각과 공상은 다르다. 공상은 주어진 상황에 아랑곳없이 의식의 흐름이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것이라면, 생각은 세상과 더불어, 주변 사람들과 나란히, 접하는 사물과 함께 마음의 호흡을 가져가는 것이다. 계절이 매듭을 지을 때, 뜻을 정성스레 하고 마음을 바루는 건 생각하는 사람이면 응당 할 일이다.
옛 선인들은 물건을 얻거나 방을 마련하거나 건물을 지으면, 명(銘)이나 기(記)를 지어 한쪽에 새겼다. 이러면 물건과 함께 생각하고 공간과 같이 사유하는 데 저절로 익숙해진다. 이름엔 바름을 깨우는 힘(正名)이 있다. 자신이 늘 다루는 물건과 항상 머무는 장소에 좋은 이름을 붙여 두고, 그 뜻을 음미하다 보면 생각은 저절로 경건해진다.
이용휴는 조선 후기 최고 문장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가 쓴 '당일헌기(當日軒記)'는 삶의 매듭이 새로 시작되려 할 때, 심장에 새기기 좋은 글이다. "사람이 오늘의 뜻을 모르고 나서부터 세상의 도가 어긋났다. 어제는 이미 지났고, 내일은 아직 안 왔으니, 어떤 일을 하려 하면 오직 오늘에 있을 뿐이다." 오늘을 어제에 매어둔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붙잡혀 있다. 오늘을 내일에 넘겨도 별 소용없다. 희망에 부풀든, 불안에 떨든 내일 우릴 기다리는 건 오늘뿐이다. 오늘을 채워서 어제를 없애고 내일을 이룩하는 일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삶에는 정해진 운수 같은 것은 없다. "오늘에 길함과 흉함, 부족함과 왕성함이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오늘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누구나 하루를 애써서 열흘을 만들고, 한 달을 만들고, 한 해를 만드는 것이다. 인생에는 다른 샛길이 전혀 없다. 나날이 길함을 쌓는 것도, 흉함을 퇴적하는 것도 모두 이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엔 밝디밝은 이 하루를 그저 버리는 날(消日)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헛된 날(空日)로 보내는 사람이 있고, 하늘의 도를 좇으며 온전한 오늘(當日)로 바꾸는 사람이 있다. 이용휴는 경계한다. "하늘은 스스로 게으름을 몰라서 항상 움직이거늘, 인간이 어찌 빈둥대겠는가." 나날이 자신을 충실히 갈고닦는 사람이어야, 날들이 단단히 모이고 겹쌓여서 드디어 바람직한 일을 하는 사람도 될 수 있고, 큰 사람도 될 수 있고, 거룩한 성인도 될 수 있을 테다. 계절의 첫머리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면서 오늘의 깊은 뜻을 생각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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