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완의 주말경제산책] 인구정책과 부동산정책의 충돌
청년들 주택마련 지원하니
집값 오르고 가계빚 폭증
금융·재정 정책과는 충돌
앞으로도 유사 현상 반복땐
신설 인구전략기획부처는
정치적 권한 갖기 쉽지않아
장기적 정책우선권 필요해
우리나라에서 인구정책이 빨간불을 켜고 달린 적은 없었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1960년대 이래 인구정책은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정책이나 신도시를 개발하는 재정정책에 항상 길을 비켜주어야 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저출산, 노령화, 인구감소 등으로 표현되는 인구변화는 이대로 간다면 이번 세기 안에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게 된다. 이제 인구정책은 빨간불뿐만 아니라 사이렌도 켜면서 도로를 질주하게 되었다. 다른 정책들이 길을 비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인구문제에 대하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고, 인구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를 신설하여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삼기로 하였다. 이미 대통령실에 저출산대책 수석비서관도 임명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는 인구정책은 현실에서 효과를 보기가 쉽지가 않다. 기존의 금융·재정 정책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자. 주택가격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작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신혼부부나 다자녀 가정들의 주택 마련을 돕기 위한 인구정책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관련 정책들을 나열하면 신혼부부 전용 주택담보대출, 신혼부부 특별 금융 지원금, 신혼희망타운 금융 지원, 다자녀 가정 전용 주택담보대출, 특례 보금자리론 등 하도 많아서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정부의 강력한 인구정책으로 젊은 세대들이 집을 사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는 집값이 상승하면서 지금 아니면 집을 못 산다는 영끌족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서울지역에서 주택을 가장 많이 매입한 연령대는 30대로 31%를 차지한다. 그다음으로는 40대가 26%를 차지하는데 상대적으로 젊은 30대·40대가 주택 매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를 훌쩍 넘는다. 이들은 실수요자들이기 때문에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쓰더라도 주택 수요를 통제하기가 어렵다.
결국 2024년 들어 금융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주택담보 대출이 빠르게 증가하여 4월 이후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매월 5조원 이상 증가하고 있고 전체 가계부채 규모는 1900조원에 이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의 증가로 금리 인하가 어렵다고 하고 금융당국은 더 심각한 고민에 빠졌는데 집값이 불안정해지면 정권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3년 전 문재인 정부에서도 경험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을 올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한 달 만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5%나 올린 은행도 있고 한 달 만에 다섯 번 올린 은행도 있다. 그러더니 금융감독원에서는 금리인상보다 대출 심사를 강화하여 주택담보대출을 통제하라고 하고 있다. 인구정책과 금융정책의 충돌로 어지러운 상황이다.
앞으로 인구정책과 금융·재정정책의 충돌은 계속될 것인데 신설되는 인구전략기획부의 부총리급 장관은 정책조율을 할 권능을 가지게 될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기획재정부가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예산기능으로 인구전략기획부는 기획재정부의 재정·금융정책에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경제가 나빠지면 정부의 재정·금융정책을 원하는 국민들의 정치적인 압력을 견딜 수가 없다. 더욱이 인구정책은 정말로 숨이 긴 정책이어서 효과가 몇십 년에 걸쳐서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효과가 빠르게 일어나는 재정·금융정책에 비하여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어렵다. 빨간불을 반짝이면서 달리는 인구정책과 재정·금융정책이 교차로에서 만나면 인구정책이 비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집값 상승은 정권의 안위에 대한 문제이고 인구감소는 국가의 소멸에 대한 문제이다. 인구정책이 장기적으로 정책 우선권을 가져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인구정책의 우선권이 보장되려면 예산편성의 거버넌스(governance)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미국 백악관의 예산국장과 같은 조직을 대통령실 내에 두어 인구정책의 우선순위를 예산편성 과정에서 끝임없이 조정해 주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정책을 위해 재정·금융정책이 양보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여 단기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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