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했는데 의대생 7700명 가르치라니"…수시 앞둔 의대교수들 한숨
의대를 포함, 2025학년도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당장 다음 주인 9일 시작하는 가운데, 의사들의 한숨이 짙다. 내년도 의대증원을 막을 마지노선을 수시모집 시행(이달 9일) 전으로 정했는데, 정부가 내년도 의대증원에 대해서는 변동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서다. 올해 휴학한 의대생 3000여 명이 내년 모두 돌아온다고 가정하면 내년 의대생은 신규 의대생 4567명, 복학 의대생 3000여 명으로 7500~7700명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의대생과 전공의 대부분이 이탈하면서 내년엔 신규 전공의 3000여 명, 신규 전문의 3000여 명이 배출되지 않는다. 병원을 지킬 의사는 없는데 가르쳐야 할 제자는 폭증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현장을 근근이 버텨온 교수(전문의)들의 이탈이 가속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안과 A교수는 "이미 번아웃이 와 언제 그만두고 개원할지 고민 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수시를 강행해 결국 내년 의대정원을 1509명 더 늘리겠다고 하니 진료와 당직도 힘든데 내년에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올해 만 60세로 해당 과 최고참이지만, 주 1회 당직을 선다. 이 병원 안과 전공의 8명이 지난 2월 모두 떠났고, 남은 전문의 7명 중 2명이 최근 번아웃으로 사직했다. A씨는 "안과 전문의들은 이 체제가 계속 간다면 올해 연말을 넘기지 못하고 안과 응급 진료 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며 "이미 40대 전후 젊은 교수들은 연내 사직하고 개원하기로 결심을 굳히는 분위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B 교수는 "전공의가 해온 당직을 대신 서면서도 낮에는 진료를 그대로 한다. 이 생활을 7개월째 이어오다 보니 진료와 교육을 병행하기 힘들다"며 "내년에 신규 전문의도, 신규 전공의도 없는데 내년에 학생을 왕창 교육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라고 호소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최안나 대변인은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시모집 원서 접수 절차를 개시하기 전까지 내년도 의대증원 계획을 바꿀 수 있다. 교육부 등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증원에 대해 입장을 바꾸길 바랐다"며 "수시모집이 당장 다음 주로, 목전에 닥쳤는데 정부의 입장 변화가 전혀 없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최 대변인은 "결국 9일 수시모집 입시를 시작하면 내년에 의대정원이 7500~7700명이 된다는 건데, (이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어떻게 할 건지 정부는 대책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결국 교육이 제대로 안 되고, 의대생 대다수가 대규모로 휴학할 것"이라며 "그 후 2026학년도부터는 의대정원이 당연히 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2025학년도 수시모집은 오는 9~13일 대학별로 각자 사흘 이상을 택해 원서를 접수한다. 수시 원서는 최대 6장까지 쓸 수 있다. 의대 교수들은 수시모집 원서 접수를 앞두고 "의대생 대량 유급이 시작되기 전 2025년 의대 정원을 취소해 학생과 전공의들을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오게 하고 정부의 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금은 국가 비상 사태"라며 "응급실은 전문의 부족으로 제대로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고, 정부의 발표와 달리 이미 많은 응급실은 정상적인 진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의비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전국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이 안 되는 곳이 14개, 흉부대동맥수술이 안 되는 곳이 16개, 영유아 장폐색시술이 안 되는 곳이 24개, 영유아 내시경이 안 되는 곳이 46개다.
이들 교수진은 "정부의 잘못된 증원 정책이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하는 필수과 의사들을 한순간에 낙수과 의사로 만들어 산부인과 분만, 시간이 늦으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소아과적 응급 질환, 생명을 위협하는 흉부외과 응급질환이 치료 불가능한 의료 후진국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9일 수시가 시행돼 증원된 채로 입시가 진행되면 더 이상 한국의료, 필수 의료는 희망조차 없어진다"면서 "2025년 정원은 취소할 수 없다고 거짓말하지 말라. 한의대와 간호대의 경우 입시 도중 정원을 변경했고 심지어 법적 근거가 없을 때 공익을 위해 수능도 하루 전 연기하지 않으셨느냐"고 반문했다.
또 "2년 전 확정돼야 하는 정책을 입시 7개월 전인 2월6일 오후2시 한의사가 포함된 보건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초 논의하고 3시에 공표하는 날치기가 개혁이냐"면서 "배정위원회에서 충북 관련 공무원을 참석시키고 강의실도 없는 충북대정원 49명을 200명으로 증원시키는 것이 개혁이냐"고 되물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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