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특권은 유지될 수 있을까[서중해의 경제망원경](34)
지난번 칼럼 ‘강한 달러와 미국의 지역경제’에서는 강한 달러의 함의를 미국 경제의 지역 격차 관점에서 짚어보았다. 이번에는 국제 경제 관점에서 살핀다. 우선 공화당 J. D.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답변부터 보자.
“미국 경제를 보면 금융 엔지니어와 많은 종류의 컨설턴트는 많지만,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와 달러에 대한 통제력 부족이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이에 대한 의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준비 통화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에 파월 연준 의장은 이렇게 답한다. “(짧은 시간에) 답하기에는 너무 큰 질문입니다. (···) 달러는 세계의 준비 통화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민주적 제도가 뒷받침됐고, 오랜 세월 인플레이션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미국의 법치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의 기축 통화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달러가 사용되고 거래가 이루어지며 사람들이 곤란을 겪을 때 달러 표시 자산을 사용하는 곳이 바로 미국입니다. (···)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법치와 민주적 제도를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으며, 물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분명한 후보가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달러 지배력, 경제력 대비 줄지 않아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과 파월 연준 의장의 답변은 달러를 두고 이루어지지만, 내용은 동문서답이다. 밴스 상원의원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신의 지역구, 즉 오하이오주의 제조업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상 때문에 오하이오를 포함한 러스트 벨트 지역의 제조업이 무너진 것이라는 생각을 질문에서 제기한다.
파월 의장의 답변은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 대신, 달러의 위상이 유지되는 근거를 설명한다. 현재까지는 미국 달러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대화 내용의 본질은 실물 경제와 금융 시스템이 미국 경제에서 어떻게 연계돼 작동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실물 경제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의 ‘과분한 특권’이 작용하고 있다. 과분한 특권이란 달러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와 준비통화로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누리는 이익을 의미한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 경제의 상대적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전 세계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 40%, 2000년 30%, 2020년 25%로 지속해서 감소했다. 그러나 달러는 국제 통화 시스템에서 가장 지배적인 통화로, 달러의 지배력은 경제력과 비교해 줄어들지 않았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각국의 은행들은 미국의 자금시장에서 조달한 달러 표시 부채를 보유하고 이를 달러 표시 자산으로 대차대조표에 기입한다. 중앙은행의 공식 준비금에서 59%는 달러로 보유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대출의 64%는 달러로 표기돼 이루어진다. 무역 송장 발행과 국제 은행 업무에서도 달러는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달러로 표기된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안전 자산’으로 수용된다.
미국 재무성이 발행하는 채권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안전자산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국가들은 달러로 표기된 안전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미국에 경상수지 흑자를 낼 유인이 있다. 이 방법의 하나가 자국 통화의 가치를 절하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간에 걸쳐 달러는 절상됐고, 나머지 통화들은 대체로 절하됐다.
미국의 대차대조표에는 수익률이 낮은 채권이 대외 부채로 표시되고 대외 자산은 수익률이 높은 주식으로 구성된다. 미국이 보유한 국제 자산과 부채 사이의 수익률 차가 달러가 미국에 제공하는 과분한 특권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고문인 구린샤(Pierre-Olivier Gourinchas)는 이를 대략 2%포인트 정도로 추정한다.
달러를 매개로 한 이러한 관계는 국제 경제의 중심축으로 아주 오랫동안 지속해왔다. 길게는 기축통화로서 영국의 파운드를 대체한 1920년대 이래로, 짧게는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 태환 정책을 중지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에 종언을 고한 1971년 이후 이런 관계가 계속됐다. 미국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는 이런 관계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경제 위상이 위축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세계 공장으로 변모하면서 산업화와 고도성장에 성공하고 오랜 기간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했다. 반면 미국은 제조업이 쇠퇴하고 금융업과 신경제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면서, 미국 내 지역 간 경제 격차가 심화하게 됐다.
대외경제정책 기조 큰 변화 없을 듯
미국 국민뿐 아니라 세계 시민들도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이민과 사회보장, 조세 등 많은 영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립해 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 정책이 바뀔 수 있어서다. 다만 교역을 포함한 대외경제정책 기조는 거시적으로 보면 크게 변화하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상은 현재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역할도 현상 유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달러의 과분한 특권에 의존해 소비 경제를 지속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일부 제조업의 공동화를 초래했다. 이는 지역 간 경제력 격차 확대로, 그리고 정치적 어젠다로 포퓰리즘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제 미국은 타국을 희생해서라도 자국 경제 회생에, 특히 제조업 부활에 역점을 두고자 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의 지배에 의한 세계 평화)를 유지해온 미국의 스탠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특히 달러의 지배적 위치로 안정을 유지해온 세계 경제 관계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제 금융 시스템이 처한 상황을 보면 ‘시장이 스스로 조절해 균형 상태에 이른다는 생각은 유토피아적 환상’이라는 칼 폴라니의 지적이 떠오른다. 폴라니는 헝가리 태생의 경제인류학자로 책 <거대한 전환>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시장의 대안은 무엇일까? 경제적 사안이 정치적 어젠다로 부각되면 경제정책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대체된다.
시장을 대신해 어떤 기제가 경제적 문제에 최적의 해결을 제공할 수 있을까? 정부의 실패 또한 빈번하다. 폴라니가 주장한 경제를 내재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목표를 누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더 큰 과제가 된다. 민주주의적 과정이 이 문제를 반드시 잘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정치적 포퓰리즘이 이를 방증한다. 새로운 대안으로의 이행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평화롭게, 아니면 격동의 시기를 거쳐야 할까? 세계 시민들 앞에 본질적으로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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