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노동자와 젊은이를 주목하라
초박빙 판세 속에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유권자 두 부류가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직된 노동자와 18~29살 젊은 세대다. 둘 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집단이다. 역으로 이들 계층 유권자의 민주당 지지율이 낮거나 투표 참여율이 예년보다 떨어지면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다. 2024년 대선은 어떨까?
막판 전력 질주 시작된 미국 대선
1886년 5월1일 미국노동연맹(AFL)이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총파업에 들어갔다.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시작된 파업은 나흘 만에 경찰의 유혈진압(헤이마켓 학살)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파업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게 국제노동절(메이데이)이다. 정작 미국에선 매년 9월 첫째 주 월요일을 ‘노동절’로 기념한다. 2024년 9월2일 노동절을 맞아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격전지인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등 3개 주를 돌며 선거 유세를 벌였다. 이들 3개 주는 2020년 대선 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근소한 차로 앞서면서 당선을 확정 지은 곳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유세에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대선 막판 전력 질주가 시작됐다”고 짚었다.
에이비시(ABC) 방송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와 공동으로 실시해 9월1일 공개한 최신 전국 단위 여론조사 결과, 해리스 부통령(50%)은 트럼프 전 대통령(46%)을 4%포인트(오차범위 ±2%) 앞섰다. 전당대회 이후 반짝 상승세는 보이지 않았지만, ‘오차범위 밖 우위’를 점차 굳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노동절 유세가 집중된 3대 격전지 상황은 조금 달라 보인다.
정치 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종합한 8월 한 달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해리스 부통령은 이들 3개 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0.5~1.4%포인트 차로 앞섰다.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우위다. 2020년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 지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2.6~4.2%포인트 지지율 우위를 보였다. 2016년과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실제 득표율이 선거 전 여론조사 결과보다 높게 나왔다는 점에 비춰 두 후보 간 우열을 논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재림’을 꿈꿨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구호 역시 1980년 대선 때 레이건 전 대통령이 사용한 구호를 재활용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 역시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위대한 미국’이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미국이라고 말했다. 레이건 행정부 때 이른바 ‘거래의 기술’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아는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당선자가 만들어졌다.
역대 선거, 노동자 득표율이 승패 갈랐다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2016년 11월10일치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신문은 “트럼프 당선자 선거운동의 핵심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민주당한테서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것이었다”며 “실제 트럼프 당선자는 조직된 노동자(노동조합원) 유권자층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에 견줄 만한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덧붙였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코넬대학 로퍼여론연구센터의 자료를 보면, 1980년 대선 때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민주당)은 조직된 노동자 유권자층에서 48%의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레이건 전 대통령(공화당)은 45%를 기록했다. 단 3%포인트 차이. 결과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앞선 1976년 대선 때 같은 유권자층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62%를 득표해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38%)을 24%포인트 차로 압도한 바 있다. 비슷한 투표 양상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984년 대선 때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는 노조원 유권자층에서 54%, 레이건 대통령은 46%를 얻었다. 1980년 대선 때와 견줘 노동자층 유권자 득표율 격차(8%포인트)는 늘어났지만 레이건 전 대통령은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당이 12년 만에 백악관을 탈환한 1992년 대선과 재선에 성공한 1996년 대선 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노동자층에서 각각 55%와 6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공화당 후보였던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24%)과 밥 돌 상원의원(30%)을 압도했다.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들 유권자층에서 각각 59%와 58%를 득표하며, 공화당 후보로 나선 존 매케인 상원의원(39%)과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40%)를 손쉽게 따돌렸다.
2016년과 2020년 대선 때도 엇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43%)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51%)를 누르고 당선된 2016년엔 조직된 노동자층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득표율 차이가 8%포인트에 그쳤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1984년 대선 때와 같은 격차다. 고졸 이하 학력에 연평균 가계소득이 5만달러를 밑도는 백인 남성 노동자층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게 컸다. 반면 2020년엔 바이든 대통령(56%)이 트럼프 전 대통령(40%)을 16%포인트 차로 앞지르며 당선을 확정 지었다. 조직된 노동자층의 표심이 대선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딸린 노동통계국(BLS)이 2024년 1월23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23년 말 현재 미국의 노동조합 가입자는 전체 노동자의 10%(약 1440만 명)다.
청년 유권자층에선 투표율이 중요
이번엔 상황이 복잡해 보인다. 대선을 1년 앞둔 2023년 11월5일 일간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학이 공동으로 실시해 발표한 격전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애리조나·조지아·미시간·네바다·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6개 격전지 노조원 유권자층의 평균 지지율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각 47%로 동률을 이뤘다. 민주당으로선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의 출마 포기 이후 판세가 달라지고 있다. 에머슨대학이 8월16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 해리스 부통령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 노조원 유권자층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56.8% 대 42%로 넉넉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펜실베이니아주는 미시간·네바다주와 함께 미국 평균 노동자 조직률(10%)을 4~5%포인트 상회하는 지역이다.
29살 이하 유권자층의 선택도 역대 대선 승부에 결정적 변수가 됐다. 미국 통계청은 2023년 말 현재 18~29살 청년층이 전체 유권자의 15.7%(약 52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로퍼센터의 자료를 보면, 1980년 대선 때 카터 전 대통령과 레이건 전 대통령은 청년 유권자층에서 득표율 44.5% 대 44%로 사실상 동률을 기록했다. 앞선 1976년 대선 때 카터 전 대통령은 같은 연령대에서 포드 전 대통령을 52.5% 대 47.5%로 앞선 바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4년 대선 때는 민주당 후보와 같은 연령대 지지율 격차를 59% 대 41%로 크게 벌리며 연임에 성공했다. 1992년과 1996년 대선 때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각각 43.5% 대 34.5%와 54.5% 대 35.5%로 공화당 후보를 압도했다. 2008년과 2012년 대선 때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각각 66% 대 32%, 60% 대 37%로 공화당 후보를 눌렀다.
2016년 대선 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55% 대 36%로 청년층 유권자층에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를 압도했다. 하지만 44살 이상 연령대층에서 득표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패배했다. 반면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은 29살 이하 연령대에서 60%를 득표해 트럼프 전 대통령(36%)을 24%포인트나 앞서며, 65살 이상 연령대 유권자층에서 벌어진 득표율 격차를 만회하며 승리를 거뒀다.
두 선거의 당락을 가른 핵심 변수는 청년 유권자층의 투표율이었다. 터프츠대학 연구팀이 2021년 4월29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6년 대선 때 29살 이하 유권자의 투표율은 39%에 그쳤다. 클린턴 후보가 청년층 득표율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19%포인트나 앞서고도 패배한 근본 원인이다. 반면 2020년 대선 때는 같은 연령대 투표율이 50%까지 높아졌다. 청년층 투표율도 높아지고, 득표율 격차도 벌린 게 바이든 대통령 당선의 원동력이었다. 청년 유권자층에선 득표율만큼 투표율도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시킨 사례다.
일간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서퍽대학이 공동으로 실시해 8월29일 발표한 전국 단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 유권자층(34살 이하)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13%포인트 앞섰다. 6월 실시한 같은 조사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청년 유권자층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11%포인트 앞선 바 있다. 후보 교체 뒤 청년 유권자의 표심이 24%포인트나 해리스 부통령 쪽으로 기울었다는 얘기다.
청년층, 성별로 후보 지지율 확연히 갈려
하지만 변수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8월24일 “격전지에서 29살 이하 남성 유권자층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포인트, 여성은 해리스 부통령이 38%포인트 앞섰다. 청년층에서 두 후보 간 성별 지지율 격차는 무려 51%”라고 짚었다. 초박빙 승부에서 보기 어려운 격차다. 그러니 다시, 문제는 투표율이다. 사상 첫 소수인종 여성 대통령 탄생 여부도 거기에 달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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