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넣을 자리 없는 돼지국밥…“여는 좀 소문나도 된다”
부산 영도구 깡깡마을 ‘옥이네집’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니, 맛집 다니면서 공무원한테 얻어묵고 다니나?”
지난봄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시리즈 부산 돼지갈비 맛집 기사를 읽은 친구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해당 기사에 ‘기자가 공무원한테 얻어먹고 다닌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린 모양이었다.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공무원과 함께 먹은 돼지갈비였는데, 억울한 마음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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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다시 차례가 돌아와 또다른 맛집을 찾아야 했다. 이번에는 오해받을 만한 조건은 모두 빼기로 마음먹었다. 맛집 추천인에서 공무원을 제외했고, 식당 주인과도 일면식 없이, 밥만 먹고 나오기로 한 것. 물론 음식 계산을 한 뒤 식당 주인에게는 기사 작성 여부를 허락받아야 하지만 그만큼 쓸데없는 오해를 사기 싫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대부분 식당 사장은 손사래부터 쳤기에 맛집 찾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행님. 숨은 맛집 아는 데 없능교?”
잇따른 맛집 섭외 실패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던 지난 3일 오전, 22년째 부산에서 기자로 일하는 김아무개(49)씨에게 숨은 맛집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로 꼽힌다.
“영도에 맛과 가성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돼지국밥집이 있어요. 옥이네집이에요. 지난해 말에 알게 됐는데, 감칠맛이라고 해야 하나, 가끔 침이 넘어갈 정도로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찾아가서 먹었어요.”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 기자가 말했다. 점심시간을 지난, 이날 오후 2시께 부산시청에서 곧바로 부산 영도구 대평동 ‘깡깡이마을’ 안에 있는 그 집으로 향했다.
깡깡이마을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2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조선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바다를 등지고 뭍을 마주 보는 지형으로 지금도 어선 등 수리 조선업이 발달한 곳이다. 배를 수리하기 전 선체에 붙은 조개를 떼어내고, 페인트와 녹을 벗겨내는 망치 소리에 깡깡이마을로 불린다. 근대 조선산업의 근거지이며, 수리 조선업 출발지로 역사, 문화, 근대산업 유산이 남아 있어 부산시는 2015년 이곳을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대상지로 선정했다.
그렇게 향한 옥이네집은 깡깡이마을 안 녹슨 닻과 드럼통 등이 널브러진 공업사들 사이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간판이 없었다면 식당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정도다. 식당 안은 11평(37㎡) 정도 너비에 4인용 탁자 5개가 있었고 손님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빈 탁자에 앉아 차림표를 보니 돼지국밥, 수육백반, 물회 등이 있었다. 돼지국밥값은 8000원이었다.
“저번(4월)에 왔을 때 7000원이었는데.” 맛과 가성비를 모두 잡은 곳이라고 추천했던 김 기자가 당황해서 말하자 식당 사장이 “물가가 너무 올라서 1000원 올렸다”고 답했다. 그런데 수육백반은 9000원이었다. 부산에 웬만한 돼지국밥집의 수육백반은 1만1천원 이상이다.
“(수육백반은) 가성비 좋구먼. 저는 수육백반이요.”
“바로 근처에 포구가 있으니 돼지국밥집에서도 물회도 있네. 저는 물회요.” 이전까지 돼지국밥만 먹었던 김 기자가 이날은 물회를 주문했다.
곧바로 탁자에 고추장, 새우젓, 고기 양념 쌈장, 소금, 부추, 깍두기, 김치, 매운 양념 마늘 소스, 양념장(다대기), 식당 사장이 직접 농사지은 상추와 고추 등이 차려졌다. 이어 돼지고기와 파가 들어간 국과 수육, 밥, 물회가 상에 올랐다.
고기와 비계가 적당히 섞인 수육에 새우젓을 살짝 올려 먹었다. 이어 수육을 상추에 싼 뒤 쌈장을 듬뿍 묻혀 입에 넣었다. 고기에 매운 양념 마늘 소스를 올려 먹으니 입이 즐거웠다.
“사장님, 고기가 맛있네요! 어디서 가져옵니꺼?”
“김해에 축산농가에서 그대로 떼옵니다. 묵을 만 하지예?”
이제는 수육백반에 딸려 나온 국물을 맛볼 차례. 돼지국밥에서 밥만 없을 정도로 고기가 듬뿍 들어있었다. 국그릇에 새우젓 한 숟가락과 부추를 가득 넣었다. 공깃밥을 넣으면, 그냥 돼지국밥이다. 돼지국밥은 뽀얀 국물과 맑은 국물로 나뉘는데, 옥이네집은 맑은 국물이었다. 소면은 없었다. 돼지국밥 식당이 소면을 주는 것은 1970년대 국가 주도로 진행된 혼분식장려운동 때문이다. 부산 돼지국밥 식당에서도 소면을 주는 집은 절반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국물에 밥을 넣고, 고기를 쌈 싸먹다 보니, 어느새 그릇이 비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 기자도 물회 한 그릇을 다 먹은 상태였다.
“물회는 어떻든가예?”
“회가 신선하고 식감이 좋네요. 무도 아삭하고요. 양념도 고추장, 초장, 설탕, 식초 등으로 내가 조합해서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마음에 드네요.” 김 기자는 “돼지국밥집과는 안 어울리는 메뉴인데, 항구 분위기가 물씬 나서 신선하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최대 관문이 남았다. 계산을 마친 뒤 잠시 가게 밖에서 사장과 만나 식당을 기사로 소개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맛집까진 아닌데”라며 계속 사양하던 옥이네집 사장은 마침내 기사를 써도 좋다고 허락했다.
“근데, 옥이는 누구에요?”
“우리 딸 이름.”
그 사이 손님이 식당에 들어갔다. 옥이네집 사장 유아무개(71)씨는 곧바로 손님을 맞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소화를 시킬 겸 깡깡이마을 산책에 나섰다. 옥이네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양다방’이 보였다. 마을 주민과 수리조선소 노동자들의 쉼터다. 드라마 ‘무빙’에서 재생 초능력자 장주원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과 황지희 역을 맡은 배우 곽선영이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도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
양다방 근처를 지나다 만난 주민 김명자(76)씨가 말했다. “옥이네집? 예전부터 있었는디,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내도 모르겄다. 맛은 좋지. 저(기)는 좀 소문나도 된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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