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자형 빌드업 탈피를 외쳤던 홍명보, 첫 시험대는 졸전이었다
야유로 시작한 홍명보호의 첫 출항은 실망만 남긴 채 끝났다.
승리가 당연했던 결과를 망쳤을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조차 한숨이 절로 나오는 졸전이었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55)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B조 1차전에서 팔레스타인과 0-0으로 비겼다.
이날 경기는 지난 7월 대한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무대가 됐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양 팀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홍 감독만 나홀로 야유를 받았다.
홍 감독을 향한 야유는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과 맞물려 수위가 높아졌다. 전광판에 홍 감독이 등장하면 야유가 쏟아지는 것으로 부족해 “홍명보 나가!”라는 구호까지 나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경기는 ‘한국 축구의 암흑시대’라는 팬들의 플래카드를 부인하기 힘들 정도로 고전의 연속이었다.
한국이 무려 16개의 슈팅을 쏟아내고도 얻은 소득은 승점 1점. 팔레스타인의 밀집수비를 풀어내지 못하면서 답답함만 안겼다. 상대인 팔레스타인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6위의 약체로 명백히 한 수 아래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정상적인 경기를 펼칠 수 없는 상태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의 졸전이 빌드업 문제라고 진단한다. 공격을 측면으로 풀어가다 다시 후방으로 빠지는 흐름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홍 감독이 최근 한국축구기술철학(MIK) 워크숍에서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U자형 빌드업이었다. 유럽에서도 톱 클래스로 분류되는 손흥민(32·토트넘)과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이 양 측면에 배치됐지만, 상대가 뻔히 예측할 수 있는 공격만 반복되니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U자형 빌드업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스포츠통계업체 ‘옵타’에 따르면 선발로 출전한 한국 선수 가운데 4회 이상 패스가 연결된 것을 기준으로 패스맵을 그릴 때 횡패스만 반복된 것이 도드라진다. 최전방에서 고립된 주민규(34·울산)가 전반전 날카로운 슈팅으로 공격을 풀어간 것이 놀라울 정도다.
전반 막바지부터는 좌우 전환과 하프 스페이스 공략으로 밀집수비를 뚫어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강인을 중심으로 패싱 게임이 진행되면서 공격이 살아났는데, 몇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게 아쉬웠다. 후반 15분 이강인이 손흥민이 내준 공을 왼발 슛으로 연결한 게 크로스바 위로 넘어간 장면이나 후반 42분 손흥민이 골키퍼까지 제친 뒤 오른발로 공을 찬 게 골대를 때린 게 대표적이다. 이강인이 2019 폴란드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단짝으로 활약했던 오세훈(마치다 젤비아)와 두 차례 찬스를 만들어낸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는 골로 승패를 가리는 종목이다. 빌드업 문제로 꼬인 전반보다는 후반이 나았으나 반드시 승리해야 할 약체와 무기력하게 비겼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홍 감독 역시 “3차예선의 첫 경기에 승리하지 못한 부분에 죄송하다”면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우리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팔레스타인전의 부진은 앞으로 남은 3차예선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남겼다. 홍 감독의 전술적인 실패 뿐만 아니라 유럽파의 온전하지 못한 몸 상태 관리도 문제점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이 걸린 3차예선에서 중동 국가(이라크·요르단·오만·팔레스타인·쿠웨이트)들만 만난다. 당장 10일 오후 11시 오만 원정을 시작으로 비행기로만 6만 190㎞(국내파 기준)를 날아가야 하는 강행군을 견뎌야 한다. 손흥민을 비롯한 유럽파들은 유럽에서 한국으로 다시 중동을 오가는 어려움까지 겹치는데, 팔레스타인전처럼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을 때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홍 감독은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컨디션”이라며 “오만전까지 남은 4일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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