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레고, ‘그린 블록’ 변신 실험[조은아의 유로노믹스]
장난감 제조기업 레고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레고 블록의 원료를 재생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플라스틱 블록의 원료로 원유를 많이 쓰지만 이제 재생 가능한 소재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레고가 친환경적인 ‘그린 블록’으로 점차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다른 기업들처럼 기후변화에 대응해 친환경적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취지다. 레고가 원료를 교체하면서 생산 비용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레고는 비용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판매 가격을 올리진 않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시도는 경쟁 장난감 기업들에서 보기 힘든 행보로 주목을 끌었다. 세계적으로 장난감 업계는 고물가와 모바일 게임 이용 증가로 매출이 줄며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게임기업과 경쟁하는 시대
레고는 1932년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덴마크 빌룬드에 설립한 가족기업이다. 크리스티안센은 원래 목재 가정용품을 제작한 목수였다. 하지만 대공황 여파로 가구 주문이 줄자 나무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 장난감 공장이 불에 타는 등 고비를 맞았다. 결국 그는 1947년 실용적인 플라스틱으로 블록을 제조하게 됐다. 블록 활동이 창의력, 상상력을 발휘하기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레고는 성장했다. 일가는 조용하던 빌룬드에 해외 수출을 위해 공항까지 건설했다.
레고도 여러 부침을 겪었다. 2017년 9월엔 매출과 이익 감소로 일자리 1400개가 줄었다. 이는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장난감 경쟁사간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어린이들이 장난감 대신 모바일 게임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게 됐기 때문이다. 레고의 경쟁자는 해즈브로, 마텔에 머물지 않았다. 이제 게임을 만드는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술기업들이 레고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레고는 최근 경쟁사에 비해 선전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레고는 올해 상반기(1~6월)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6% 급증해 81억 덴마크 크로네(약 1조6000억 원)에 달했다.
반면 글로벌 경쟁사 마텔은 같은 기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 해즈브로는 21% 감소했다. 인형 ‘바비’ 제조사인 마텔은 2023년 영화 ‘바비’ 개봉으로 매출이 급증한 뒤 올해 역기저 효과를 보이고 있다. ‘트랜스포머’ 장난감과 보드게임 ‘모노폴리’를 만든 해즈브로는 고물가로 매출이 감소하며 작년엔 직원의 20%를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경쟁업체와 달리 선전한 비결에 대해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CNN에 “우리 제품 포트폴리오는 모든 연령대와 관심사에 매우 잘 맞다”고 설명했다.
● 매장 늘리고 경쟁사와 협력
레고의 성장 비결로 ‘적과의 동침’에 성공한 점도 꼽힌다. 크리스티안센 CEO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미국 게임회사 에픽게임즈와의 제휴와 이를 통한 포트나이트 등 우주 관련 제품 판매가 회사 성장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게임기업이 강력한 경쟁자이지만 레고는 이들의 게임 아이템을 상품으로 제작해 오히려 이익을 본 것.
매장을 늘려 고객과 접촉을 늘리는 전략도 통했다. 레고는 지난해 상반기(1~6월) 매장 89곳을 신규 개설해 988곳으로 늘렸다. 컨설팅기업 글로벌데이터의 엘리노어 심슨골드 수석 리테일 분석가는 영국 더타임스에 “레고는 고객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아이디어에 절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고객이 장난감으로 무언가 만들고 판매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영감을 얻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이제 탄탄한 수익을 바탕으로 친환경 연료에 투자하는 실험이 성공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NN에 따르면 레고는 2030년까지 원유로 만든 블록을 대체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600개가 넘는 다양한 소재를 검토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게다가 생산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세계적 재생 원료 생산업체인 네스테에 따르면 원유로 제작된 플라스틱의 가격은 재생 가능 제품의 절반이나 3분의 1 수준이다. 레고는 원유 플라스틱을 쓰는 경쟁사에 비해 상당한 가격 부담을 지는 도전에 나선 셈이다. 그럼에도 크리스티안센 CEO는 최근 CNN에 “우리는 1년 전보다 지금 친환경 분야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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