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미래다]④ “우리 동네엔 안돼”… 전국서 전력망 차질

이인아 기자 2024. 9.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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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주기적으로 중장기 에너지 계획을 수립한다. 미래 전력 수요를 예상하고 그에 맞는 공급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수립돼야 할 에너지 정책이 정치화되면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돌아온다.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의 미비점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강원도에 있는 화력 발전소 삼척블루파워(삼척 1·2호기), 북평화력발전소(GS동해전력 1·2호기), 삼척그린파워는 생산한 전기를 수송할 망(송전망)이 없어 현재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삼척블루파워는 총 사업비 4조9000억원이, 북평화력발전소에는 2조1000억원이 투입됐다.

한국전력은 이곳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사업을 진행 중인데, 경기 하남시가 최종 관문인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을 최근 반대하면서 차질이 예상된다. 한전과 하남시는 작년 10월 업무협약(MOU)까지 체결했으나 하남 시민들이 반대하자 하남시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하남 시민은 전자파가 많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지만, 한전은 변전소에서 가장 인접한 아파트 정문의 전자파 측정치가 일반 편의점 냉장고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6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이 사업이 무산되면 전체 국민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이 연간 3000억원씩 늘어난다고 밝혔다.

경기 하남시에 있는 동서울변전소 전경./한국전력 제공

◇ 전력 수요 느는데, 전력망 확충은 지지부진

반도체 공장 증설, 인공지능(AI) 산업 발달 등으로 향후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전력망 확충 사업이 지역 주민의 반발에 막혀 차질을 빚고 있다. 한전과 지역 주민 간 갈등이 계속되면 수십조원 규모의 대기업 투자 계획도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서해안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경기 남부 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345kV(킬로볼트)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당초 2012년 6월에 착공할 계획이었으나 지역 주민의 민원으로 사업이 150개월 넘게 지연됐다. 당진 화력~신송산·신시흥~신송도 송전선로, 신장성 변환소 신·증설 사업도 이미 착공해야 했지만, 한전은 공사시기를 모두 2027년 이후로 늦췄다.

전력망 사업은 입지 선정→사업 승인→지원·보상→시공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최근엔 거의 모든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여기에 환경단체, 지역 국회의원 등도 가세하면 갈등이 더 커진다. 한전에 따르면 345kV 가공 선로(철탑 등을 이용해 공중에 설치한 선로)를 지으려면 지자체 인허가에만 평균 13년이 걸린다. 입지 선정 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주민 열람·공고·설명회를 거부하는 식으로 지연시킨다.

그래픽=손민균

해외에서는 송전망 건설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주민 참여를 늘리고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만들어 주민 수용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인허가를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핵심 프로젝트 선정, 행정절차 간소화 등으로 길을 터주기도 한다. 독일, 미국은 송전망 건설 초기 단계부터 이해관계자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단계별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도록 한다. 일정 기간 내 토지 보상이 마무리되면 보상금을 추가 지급한다.

아예 송전망이 필요하지 않게 지역별 분산 에너지를 활성화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전력이 필요한 산업단지 옆에 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인근 지역에 발전소를 짓는다면 지역 갈등, 송배전망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단지./뉴스1

◇ 원전 부지 ‘0′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도 기피

발전소 설립도 난항이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 부지는 하나도 없다. 2015년에 발표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에서는 경상북도 영덕군 천지 원전 1·2호기 건설 예정 부지, 강원도 삼척 대진 원전 1·2호기 부지가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모두 없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제11차 전력계획 실무안에서 2038년까지 신규 원전 3기,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지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부지 선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상풍력, 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도 인근 주민에게는 기피 시설로 취급된다. 지난 2019년부터 추진된 ‘송도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사업’은 주민 반대로 결국 철회됐다. 대전 평촌일반산업단지, 여주 신남리 등지에도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세우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통영시 욕지도 해안과 울산 바다에서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짓는 사업도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지방에 발전소를 건설하고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오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결국 충분한 보상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해 재원 마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기료를 현실화해야 한다. 일종의 목적세 형태로 전기요금에 세금을 매겨 이런 문제에만 쓸 수 있도록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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