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대전환 시대, 금융시장 흔드는 엔화
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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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방향을 트는 모습을 보일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서사가 있다. 단골손님처럼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의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한 뒤 환차익과 금리 차익을 얻는 투자 방법) 청산 얘기가 나온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금리 대전환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이후 지속된 금리 인상 사이클을 멈추고 인하로 방향을 틀고 있다. 주역은 미국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사이클을 끝내고 인하 사이클을 준비한다. 2024년 9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예외가 있다. 일본이다. 금리정책 전환은 하고 있지만 세계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다른 나라가 금리를 올릴 때는 가만있다 내리려고 하니 외려 올린다. 2024년 3월, 17년 만에 금리를 올렸다.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끝냈다. 이도 모자라 소비 침체 여파로 국내총생산(GDP)이 4분기 연속 역성장하는 와중에도 7월에 정책금리를 다시 15bp 올렸다. 이로써 단기 정책금리는 0.25%가 됐다.
캐리 트레이드는 본질적으로 국가 간 이자율 차이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일본 금리가 0%고 미국 이자율이 5%라면, 투자자는 일본에서 돈을 빌려 미국 이자율에 투자하면 이론적으로 5% 이익을 낼 수 있다. 팬데믹 이후에도 일본은 저금리를 유지한 데 비해 미국 등 다른 나라는 금리를 급격히 올렸다. 금리차 확대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일본은 금리를 올리고 타국은 금리를 내리고 있다. 금리차가 좁아지면서 캐리 트레이드의 유인이 줄어들고 있다.
가중되는 청산 압박
환율 변화도 캐리 트레이드에 매우 중요한 변수다. 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투자한 국가의 통화가 약세를 보이고 차입국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익은 급감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로 1천억달러 수익을 냈다고 상정해보자. 엔-달러 환율이 1천엔일 때는 수익을 엔화로 바꾸면 100만엔이다. 한데, 엔-달러 환율이 800엔으로 밀리면 수익은 80만엔으로 쪼그라든다. 현재 미달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가 명확해지며 약세를 보이고, 엔화는 일본은행 금리 인상 여파로 강세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언제나 있어왔다. 핵심은 그 속도와 지속성이다. 급속도로 장기간 진행된다면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일시적 이벤트라면 돌풍에 그칠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엔화는 과연 강세 추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그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가 세계 금융시장을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을까?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1년 말 이후 국경 간 엔화 차입은 7420억달러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1천조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다. 문제는 이 돈이 일시에 청산되면서 일본으로 귀환할 것이냐다. 앞서 언급했듯 이 돈 중 일부는 분명 청산됐거나 될 가능성이 높다. 2024년 8월 첫째 주에 몰아친 전세계 금융시장의 급락이 이를 말해준다. 다만 엔 캐리 트레이드가 일시에 청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허구에 가깝다.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성격과 수익률은 천차만별이다. 차입 및 상환 조건 역시 일률적이지 않다. 투자 대상, 목적도 마찬가지다. 엔화가 급등해 미국과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의 격차가 좁혀진다 해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모두 손실 위험에 처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일시 청산 시도는 모두가 공멸이라는 걸 안다. 결론적으로 단계적 청산은 가능하지만, 일시적 청산은 지극히 비현실적 가설이다.
캐리 트레이드의 본질은 환율이다. 이자율 차이도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론 환율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캐리 트레이드의 지속, 청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환율은 외환시장이 결정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특정국 펀더멘털에 의해 결정되지만, 단기적으론 시장 참여자의 투기적 거래 양태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우선 미국과 일본의 펀더멘털을 살펴보자. 미국 경제는 좋다. GDP 성장은 양호하며 인플레이션은 잡혀가고 있다. 최근 고용시장이 흔들린다고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 팬데믹 이후 수치가 워낙 좋았기에 기저효과로 나빠 보일 뿐이다. 실업률 4.3%는 역사적 저점에 가깝다. 전망 역시 나쁘지 않다. 제조업 복귀,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은 미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단기적으론 둔화 양상을 보일 것은 확실하다. 이 역시 팬데믹 이후 경기 호황에 대한 기저효과에 기인한다.
엔화 강세 현상 뚜렷
일본은 어떤가? 장단기적 전망 모두 지표상으론 부정적이다. GDP는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고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금융시장과 수출 대기업은 엔저 효과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역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원인은 엔저가 물가를 높이고 이는 다시 GDP의 50%를 차지하는 소비를 얼어붙게 하고 있어서다. 이에 일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나섰다. 임금 인상을 독려하는 이유는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 실질임금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2024년 5월에도 1.4% 감소했다. 26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실질임금 상승을 의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할 것이다. 게다가 일본은 엔저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수십 년 저금리에 길든 일본의 기업과 경제가 과연 금리 인상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펀더멘털을 보면 엔화 강세가 지속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환율 시장 흐름은 어떨까? 2024년 8월9일 현재 엔-달러 환율은 146엔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7월10일 161엔까지 갔던 환율이 급락했다. 한 달 새 엔은 거의 달러 대비 10% 정도나 올랐다. 강세 현상이 뚜렷하다. 최소한 환시장에서는 캐리 트레이드가 빠르게 청산되고 있다. 엔-달러는 37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었다. 이는 달러 매수/엔 매도 포지션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가 된다. 달러가 약세 기미를 보이자, 이들 포지션 보유자 일부는 수익 실현에 나섰다. 엔 강세가 시작된 배경이다. 기술적 요인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달러 매수/엔 매도 포지션을 잡을 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스톱’ 주문을 걸기 마련이다. 150엔이 깨진 건 이 때문이다. 달러 강세를 예상한 투자자들이 변곡점이었던 150엔 정도에 스톱 주문을 걸어놨는데 엔-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이들 스톱 주문이 자동으로 발동했다. 엔-달러가 순식간에 142엔까지 밀린 이유다.
중요한 건 큰 그림이다. 이런 되돌림은 최근에도 있었다. 2022년 10월 149엔에서 2023년 1월 초 128엔까지 급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2023년 11월 초 151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이 2023년 12월 말 141엔까지 내리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엔-달러 환율이 161엔 정점에 도달했고 하락세가 계속 이어져 140엔 또는 120엔까지 갈 거라 보는 건 아직은 너무 이른 주장이다. 최소한 미국과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중장기적으로 한쪽은 긍정적이지만 다른 쪽은 여전히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금리차 축소는?
그럼에도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화됐다는 거다. 미국 경제가 아무리 좋아도 가중평균금리 압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특정 거대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과 소비자에게 높은 금리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를 무시한다면 경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연준은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한다. 금리 인하는 곧 시작될 것이다. 핵심은 일본이다. 일본이 두 차례 금리를 올렸지만 겨우 0.25%포인트 올렸다. 일본은행은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 공언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8월 초 금융시장이 폭락세를 보이자 황급히 물러섰다. 금융시장 환경이 불안정할 경우 금리 인상을 자제할 수 있다고 일본은행 부총재가 말했다. 시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캐리 트레이드의 유인이 됐던 미-일 간 금리차 축소가 급격히 이뤄질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환시장에서 투기적 거래자(레버리지 펀드)의 엔 매도 포지션은 빠르게 줄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발표한 8월6일 데이터를 보면 이들의 엔 순매도 계약은 2만4천여 개로 2023년 2월 이후 최저치로 하락했다. 7월 초 18만 건에 이르던 계약 수가 7월 말 7만 건으로 줄었고 8월 들어 더 급감한 것이다. 최소한 외환시장에서는 엔 매도에 베팅했던 물량이 거의 청산됐다. 엔 매도 청산은 엔 매수를 뜻한다. 이는 엔화 강세로 나타난다. 이제 엔 매도 포지션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 따라 급격한 엔 강세가 나타날 가능성도 낮아졌다.
세계 금융시장은 2024년 8월 들어 큰 변동성을 보였다. 호사가들은 그 이유를 미국의 침체 우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꼽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중에 두 개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아직 건재하다. 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일시적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것이 지속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불러올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대부분이 예상하는 부정적 이벤트가 시장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언제나 붕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기폭제가 된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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