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유연화돼야 사교육 줄어… 교내 딥페이크, 무관용 엄중처벌”[현안 인터뷰]

김만용 기자 2024. 9. 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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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
고교서 모든 에너지 대입 집중
초중등 과정 개혁노력 수포로
입시 달라져야 교육 미래 생겨
줄어든 학생들 맞춤교육 하려면
교원수 유지해 새 역할 맡겨야
도내 학생수 많지만 과학고 1곳
권역별로 1곳씩 4곳 더 필요해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경기도교육청 서울사무소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입시가 달라져야 대한민국 교육이 변하고 우리 교육에 미래가 있다”며 대학입시 개혁 의지를 밝히고 있다. 박윤슬 기자

언론인들은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을 언제 만났느냐에 따라 임 실장, 임 장관, 임 의원, 임 의장 등으로 달리 부른다. 임 교육감은 여당의 대표적 정책통이었다. 2008년 정책위의장이던 당시 일부 주니어 기자들은 그에게 질문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질문을 잘 받아주는 상냥함은 좋았지만 ‘교수님’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답변이 쓸데없이(?) 깊이가 있었다. 그는 노동부 장관이던 2009년 친노조 노동법을 개정하는 큰 성과를 만들었다. 대화 파트너가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임 교육감의 인내심과 언변, 설득력 등을 높게 사는 이들이 많았다.

2009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이 외교·안보와 무관한 노동부 장관에게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만나 남북정상회담 합의 가능성을 타진하게 한 것도 임 교육감의 탁월한 수싸움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이었기에 2010년 대통령실장으로 낙점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런 점에서 경기도민들은 지난 2022년 6월 이념보다 능력을, 과거보다 미래를 선택했다. 진보 교육에 지칠 대로 지친 경기도민들이 처음으로 보수 진영 임 교육감에게 경기도 교육의 미래를 맡긴 것이다. 현안인터뷰를 위해 지난달 중순과 지난주 서울 여의도 경기도교육청 서울사무소에서 임 교육감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보수 진영 첫 경기도 교육감이다.

“자율, 균형, 미래를 지향하는 교육으로 경기교육을 반드시 새롭게 바꾸겠다는 의지에 경기도민이 화답해주셨고, 그 결과 경기도 교육감으로 취임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동안 획일, 편향, 현실 안주에 머물렀던 경기교육을 진단해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교육 본질을 회복하며 공교육의 책임을 확대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 2년은 학교 교육에서 학력 향상과 기본인성 함양의 중요성을 되살리는 시간이었다. 우선 학교 중심의 정책 기반을 조성하고,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해 디지털 교육환경 조성과 지역협력교육을 선도했다. 글로벌 융합 인재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학력 향상과 인성교육도 체계화했다. 경기교육의 변화를 시작으로 공교육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중도 낙마했는데.

“지난 2년간 교육을 위해 함께 논의하던 분이 떠나시게 돼서 안타깝다. 서울시 교육이 어떤 경우에도 중단돼서는 안 되고 학교 현장에 혼란이 있어서도 안 된다. 새 서울시 교육감은 교육의 시대적 요구와 변화를 공감할 수 있는 분이 되셨으면 좋겠다.”

―예고 없이 교육 현장을 찾아가는 ‘임의월(任意越)담’이 유명해졌다.

“경기도 교육감으로 취임해 느낀 바가 있는데, 그간 우리 교육청이 굉장히 수직적 조직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어디 가자’고 하면, 내 동선을 분 단위로 깨알같이 적어서 준비한다. 동선 보고서를 4∼5장씩 만들어서 들고 온다. ‘제발 그거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안 고쳐지더라. 그래서 임의로 가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도착하기 한 20∼30분 전에 전화해서 교장 선생님이 계신지 물어보고 간다. 며칠 전에 알려주면 그쪽은 준비하느라 얼마나 부담스럽겠나. 그렇게 가야 현장에서 솔직한 얘기도 듣고 확인할 수 있다.”

―의대 열풍이 거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의사라는 직업은 안정적이라고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의사는 어디에 가서 어떤 자리에 있든 일정 수준 이상 대우를 받으니까.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것이다. 하지만 의대 열풍은 부모 세대가 사회의 변화를 잘 읽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 시대가 가고 아이들이 성장해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됐을 때는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가 의사 숫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의료 체계 개선에 대한 의식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렇게 의사만 늘려놓고 의료 체계를 안 고치면 나중에 성형외과·피부과 의사만 2000명 늘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무리 의사 수를 늘리고, 국가가 병원 시설을 지어주고, 의사들에게 월급을 준다고 해도 의사들이 지역으로 자발적으로 갈지 의구심이 든다. 현실적으로 지역은 환자도 없고, 수익도 안 난다. 환자를 많이 봤다는 실적이 없으면 도시로 진출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청사진을 내놓고 의료 개혁 정책을 추진해줬으면 한다. 의대생 증원에 맞춰 의대의 교육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굉장한 의구심이 있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위기감이 커 보인다.

“이런 상황이 3∼4년 계속되면 10여 년 의료공백이 생길 수 있다. 현재 공공의료 체계의 붕괴 현상이 심각하다. 망가뜨리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다시 세우는 건 어려울 것이다. 준비가 미흡한 정책 추진으로 세계 최고의 의료 체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대통령이 느꼈으면 좋겠다.”

―만약 임 교육감이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면 어떤 조언을 할 건가.

“증원한 의대생에 대한 부실 수업 문제를 지적했더니 교육부에서 의대 수업 2부제 얘기를 말하더라. 그건 정말 현장을 너무 모르는 얘기다. 제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수장들이 현장에 귀 기울이고 대통령에게도 직언해야 한다. 나중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의 우수한 공공의료 체계를 망가뜨리고 후퇴시켰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그런 것 하라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이나 정부나 자존심 싸움만 하고 있다. 원점으로 돌아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딥페이크(불법 합성물) 때문에 학교 현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수사기관과 협력해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을 만들고 유포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찾아내 용서하지 않고 엄중히 처벌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경기도교육청의 확고한 원칙이다. 딥페이크로 인한 현장의 피해에 대해 여러 비상 체계를 마련해 철저하게 대응하겠다. 도 교육청, 25개 교육지원청에 ‘학교 현장 밀착형 특별대책반’을 가동해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피해 신고 현황을 매일 파악하고 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고 학교 현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운영할 방침이다.”

―임 교육감이 대학입시 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세계적 변화 흐름을 볼 때 대학입시가 절대 목표가 돼 사회의 모든 시선이 쏠리는 지금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시대를 위해 공교육에서 필요한 교육을 실현해도, 결국 사교육에 대한 의존이 여전한 것은 대입제도에 그 뿌리가 있다. 대학입시 제도의 문제는 고등학교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유아·초등·중등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현장의 변화를 가져와도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를 위한 시험 준비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된다. 이전단계 교육의 결과와 가치가 흔들리고 무너지게 된다. 대학입시가 달라져야 대한민국 교육이 변하고 우리 교육에 미래가 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과 공교육 격차 문제를 호소한다.

“학생 개개인이 다른 소질을 갖고 태어났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며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근본 목적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보편적 교육을 하는 것 외에 각자의 개성에 맞게 교육받는 부분에 대해 사교육에서 해결해왔다면, 앞으로는 그 부분을 공교육 체계에서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공교육을 유연하게 하고 공교육을 확장하면 얼마든지 사교육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또 요즘 학생들을 보면 각자의 생각을 강요하기 어려운 시대다. 현재의 공교육 체계로는 그런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교육할 수 없다. 공교육이 먼저 유연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다양하게 변화하리라고 본다.”

―경기도에 과학고가 더 필요하다고 보나.

“현재 경기도에는 과학고가 1개다. 경기도 학생 수는 대한민국 약 3분의 1이다. 전국 과학고 입학경쟁률은 평균 3.9 대 1, 경기북과학고는 10 대 1에 육박한다. 지금의 학생 수 기준으로 봐도 과학고가 권역별로 1개씩은 더 있어야 한다. 최소 3개, 4개 정도 신규 지정돼야 한다. 학생 수 대비 과학고 수의 부족으로 경기도 학생들은 원하는 과학교육을 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학생들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에서 과학은 어떤 존재인가.

“앞으로 국가의 운명과 학생들의 미래는 과학기술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과학교육이 중요하고 과학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인류가 가진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결할 수 있다. 대기오염 문제에 대해 공기정화장치도 과학기술이고, 바이러스 등 삶의 영향을 주는 면역력 증진도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이 미래 개인의 삶, 국가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열쇠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 교사의 수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학생들은 우리가 성장할 때보다 더 다양한 세계를 본다. 기성세대가 자랐던 시대에는 세계 속에 맞춰진 교육을 받도록 강요받았다면 이제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우도록 해야 한다. 학생 맞춤교육을 위해, 교육의 새로운 디자인을 위해, 미래 사회의 교육 변화를 위해 교원 수를 줄여서는 안 된다. 학교와 교육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만드는 시작이다.”

―교육계에 대한 국민적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국민이 보시기에 교육계가 자기의 성이 견고하고 변화하지 않으려 한다는 인상이 있다. 앞으로 교육계가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면 굉장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실망이 신뢰로, 또 그 신뢰가 기대로 바뀔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김만용 기자 my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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