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던’ 발걸음이 여기 이 책방에 모여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시사IN〉 제880호를 읽던 임이경씨의 눈이 반짝였다. 울산 동네서점 ‘책빵자크르’에서 7월5일 열린 첫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 후기 기사를 보던 중이었다. “8월에는 전남 순천시의 ‘서성이다’에서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기사 말미에 소개되어 있는 다음 독자위 순서를 보자마자 순천 동네책방 ‘서성이다(@walking_with_book)’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다. 댓글을 남겼다. “신청하고 싶어요!”
임이경씨는 순천 시내에서 노플라스틱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시사IN〉을 읽으며 “좋다, 너무 좋다, 이번 기사 진짜 좋다” 하는 순간들이 쌓여갔다. 좋은 건 같이 읽고 싶어 카페에도 꽂아놓았지만 잡지를 펼쳐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뭔가 얘기하고 싶은데 관심 있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이참에 비슷한 사람들을 한번 만나보자 하고 왔어요.”
8월9일 저녁 7시. 이처럼 서성이던 발걸음이 한곳에 모였다. 김문정, 서동화, 시도, 이귀선, 이복심, 임이경, 장동준, 정홍윤, 허봉수(가나다순) 그리고 동네책방 ‘서성이다’의 조태양 대표가 자그마한 공간에 둘러앉았다. 7월에 발행된 〈시사IN〉 제876~879호를 리뷰하는 자리였다. 이번에 〈시사IN〉을 처음 읽어본다는 독자가 많았다.
동네책방 ‘서성이다’는 2018년 한글날 전남 순천시 문화의 거리에 문을 열었다. 박노해 시인의 시 ‘서성인다’와 가수 이문세씨의 노래 ‘옛사랑’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실은 ‘글로써 성공한다(서성·書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시사IN〉 읽기 모임을 하기에 딱인 곳이었다. “기사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뒤에서부터 읽어보라” 등의 꿀팁이 오갔다.
■ 제876호 동반자
숏폼 시대에 긴 호흡의 기사란
오랜 독자라면 반가운 바이라인이었을 것이다. 정년을 마치고 〈시사IN〉 편집위원으로 돌아온 남문희 한반도 전문기자가 특유의 장대한 시야로 북·러 정상회담의 함의를 짚었다. 독자들에게 미국 대선 레이스, G7 정상회의, 서해 경비계선을 넘나드는 분석 기사가 쉽지만은 않았다. 조태양 대표는 “확실히 읽긴 읽었다(웃음)”라면서도 “국제 정세는 조금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귀선씨는 〈시사IN〉이 긴 호흡의 기사를 추구할 수 있는 저력에 대해 궁금해했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잖아요. 사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숏폼에 길들여져서 짧고 강한 것을 찾게 되는데 〈시사IN〉도 고민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 제877호 전기는 어디로 흐르나
서울이 지방을 착취한다
밀양 송전탑 투쟁 10주년을 맞아 이오성 기자가 쓴 ‘밀양 할매의 눈물은 어디로 흐르는가’ 기사를 펼치자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참석자 중 여러 명이 6월8일 경남 밀양에서 열린 10주년 행사에 다녀왔다고 했다.
임이경: 문의하려 전화를 걸었는데 되게 젊은 청년(남어진 송전탑반대대책위 집행위원)이 전화를 받으시는 거예요. 그분이 고등학생 때부터 밀양 싸움에 함께했고 20대 활동가들이 이번 행사 준비에 주축이 되었다는 내용이 기사에 나오더라고요. ‘이런 마음으로 밀양 10주년을 준비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저는 사실 순천이 아니라 울산 사람이에요. 원자력발전소라든지 에너지, 지진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이치우 열사님이 분신했을 때, 활동하던 동아리에서도 연대하기 위해 밀양에 직접 가고 했거든요. 그때 20대였던 제가 30대가 되었는데 10년 후에도 ‘이렇게 잊지 않고 연대가 이어지고 있구나’ 싶어서 위로도 얻고 공감도 많이 가고. 저에게는 이 기사가 정말 남달랐어요. 지금 얘기하면서도 좀 울컥하네요.
조태양: 저도 밀양 싸움에 같이 연대를 했어요. 이게 바로 뒤에 나오는 AI 전력 기사(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랑 연결되어서 기획이 되게 좋았어요. 살짝 아쉬운 점은,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조금 더 비중 있게 다뤄졌으면 싶더라고요.
장동준: 밀양 송전탑과 관련해 서울이 지방을 식민지화하는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더라고요. 동의합니다.
임이경: 서울이 지방을 착취하죠. 전기 만드는 데 따로 있고 쓰는 데 따로 있는.
조태양: 밀양 기사에 딱 맞는 할머니의 구술이 나와요. 한번 읽어볼게요. “데모하러 서울 갔는데 삐까뻔쩍하이, 마 정신이 읎어. 아 여 이래 전기 갖다 쓸라꼬 우리 집 앞에다 송전탑 시운 기구나. 이래 느그는 팡팡 에어컨 돌리고 야밤에 온 시상을 대낮겉이 밝혀놓고 이라노 말이다.”
■ 제878호 1강 2중 1약
학교 앞 현수막에서 봤던 그 회사
사회팀 이은기 기자가 쓴 ‘엄마는 알고 싶습니다,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 기사가 실린 호였다. 6월16일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숨진 열아홉 살 노동자는 전남 순천이 고향이었다. 장동준씨는 알고 보니 자신이 다닌 특성화고 후배였다며 “전주페이퍼는 학교에서 ‘몇 명이 취업했다’고 홍보용 현수막을 걸 때 들어가던 회사”라고 말했다. 전북 전주 출신인 서동화씨도 말을 보탰다. “전주 제지가 꽤 유명해요. 순천은 전남이고 전주는 전북이긴 하지만 기차도 같은 노선이고 말투도 같아요. 그렇게 멀리 느껴지지 않죠. 큰 회사에 들어갔다고 좋아했을 텐데···.”
경남 산청에서 교사로 일하는 시도씨는 이날 단골 책방인 ‘서성이다’를 찾았다가 즉석에서 독자위원회에 참여하게 됐다. 지역 언론인들이 직접 해당 지역의 현안을 전하는 ‘전국 인사이드’ 코너에 마침 경남 산청군의 소식이 실려 있었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지리산 케이블카 유치에 나서는 지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시도씨는 “반대운동이 계속되는데도 산청군은 무시하고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라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 제879호 새 일꾼, AI
10분 만에 다 풀어버려요
7월의 찾아가는 독자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AI였다. ‘김태용과 탕웨이 그리고 인공지능(제876호)’에서 촉발된 논의는 ‘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제877호)’를 거쳐 제879호 커버스토리 ‘정녕 이 동영상을 제가 만들었단 말입니까?’와 ‘AI도 넘지 못한 한국 수능의 벽’으로 이어졌다. “우리 학생들이 AI를 뛰어넘는다”는 농담도 잠시, 실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민들이 터져 나왔다. 벌교여고 교장 선생님인 정홍윤씨는 “학교 현장이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당장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가 초등학교 3~4학년, 중1, 고1의 영어·수학에 들어온단 말이에요. 아이들의 문해력 자체가 이미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걱정이 큽니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전자교과서를 없애는 추세예요. 한국만 밀어붙이고 있는 거죠. 지금도 학생들에게 태블릿을 줄 때 교육용으로만 쓸 수 있게 (다른 사이트 접속을) 막아서 주거든요. 그런데 10분 만에 다 풀어버리고 전부 유튜브를 보고 있어요.”
이날 함께 ‘서성이다’를 찾은 조남진 사진팀장은 제879호 ‘시선’ 지면에 실린 기사 ‘닮은 재난, 느린 복구’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시선’은 〈시사IN〉 사진팀이 꾸리는 사진 기획 지면이다. “원래는 박미소 기자를 경북 예천으로 보냈어요. 지난해 예천에서 수해가 크게 났잖아요. 수해 1년 후를 담으려고 예천에 갔는데, 갑자기 경북 지역에 비가 많이 왔어요. 그 탓에 경북 영양에서 붕괴 사고가 난 거예요. 빨리 ‘영양으로 이동해라’ 했죠. 예천은 아직 지난해 수해 복구 작업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영양에서 새로운 수해 현장을 또 찍게 된 셈이죠. 그래서 예천과 영양의 사진이 모두 실리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찾아가는 독자위원회는 대전 ‘바베트의 만찬’에서 9월6일(인스타그램 @babette_bookstore 0507-1474-0121) 열린다. 10월에는 경북 경주 ‘너른벽(@neoreunbyeok_bookshop)’, 11월에는 강원 속초 ‘완벽한 날들(@perfectdays_sokcho 0507-1405-2319)’, 12월에는 경기 안성 ‘다즐링 북스(@darjeeling_books 0502-1932-8732)’에서 모임을 열 예정이다. 관심 있는 독자는 개별 서점에 문의하면 된다. 〈시사IN〉 독자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동네서점의 신청도 환영한다(문의: ilhostyle@sisain.co.kr).
순천·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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