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옷 태워 벽돌 굽는 캄보디아 공장 [책&생각]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에 탄소 배출 외주화
윤리적 소비론 역부족…환경파괴 감시, 법제화 시급
재앙의 지리학
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
로리 파슨스 지음, 추선영 옮김 l 오월의봄 l 1만9800원
“영국은 지난 3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44% 줄였습니다. 그사이 GDP(국내총생산)는 78% 상승했습니다. 즉 오염을 줄이는 동시에 일자리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2021년 9월22일 유엔 총회에 참석한 전 세계 지도자들 앞에서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그해 10월31일부터 11월13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예정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그는 “모든 국가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서약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존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재앙의 지리학’의 지은이 로리 파슨스(로열홀러웨이런던대학 선임강사)는 “현재 영국의 경우 생산의 상당 부분이 자국 국경 밖에서 이뤄지고 있어, 영국인들이 매일 사용하는 재화를 만드는 데 발생하는 탄소가 영국의 탄소 예산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탄소 예산에 추가되는 경우가 점점 더 늘고 있다”며 “영국 정부는 지난 20년간 (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감축해온 것이 아니라 배출량을 해외로 이전하는 데 주력해온 것”이라고 꼬집는다.
이것이 영국만의 일도 아니어서, 유럽연합과 미국 등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들은 너나없이 자국에서 소비되는 재화 생산에 필요한 탄소 발생량을 가난한 나라들로 ‘외주화’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를 가리켜 ‘탄소 식민주의’(책의 원제 ‘Carbon Colonialism’)라 부른다. 영국 등 부유한 나라들의 몫으로 잡혀야 할 탄소 발생량을 가난한 나라들이 떠맡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통계와 수치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유한 나라 시민들이 경제적 이득과 환경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가난한 나라 시민들이 기후 붕괴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는 뜻이다. 제26차 당사국총회가 끝난 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글래스고 거리에 모인 군중 앞에서 “이게 무슨 기후 회의인가요? 글로벌 북반구의 그린워싱 축제일 뿐이죠”라고 일갈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린워싱이란 친환경을 내세우며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광고의 궤변을 가리키는 말이다.
‘재앙의 지리학’은 이렇듯 글로벌 북반구가 남반구에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를 떠넘기는 실태에 주목한다. 지은이가 현장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캄보디아의 벽돌 공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감추고 있는 새로운 식민주의의 정체를 까발린다. 영국의 발전을 이끈 섬유 산업이 농촌 지역의 공유지를 없애는 인클로저와 아동 노동, 그리고 노예제에 기반을 둔 미국의 면화 플랜테이션 덕분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의 벽돌 공장 역시 경작지에서 쫓겨나 채무 담보 노동자로 전락한 이들의 “지속 가능하지 않은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이 쫓겨난 경작지의 토양은 벽돌 재료로 파헤쳐져 생명력을 잃고 기후 위기에 취약해지게 된다. 이처럼 “민중과 환경에 대한 학대는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지은이가 목격한 프놈펜 변두리 벽돌 공장 밀집 지역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벽돌 가마 밀집 구역의 가마 네 개에서는 오로지 옷가지만을 땔감으로 태우고 있었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 라벨이 붙은 그 옷가지들은 폐기물 무역을 통해 유입된 쓰레기 더미에서 수거해 온 것들이었다. 노동자들이 오가는 가마 주변으로는 시커먼 연기 기둥이 맴돌았고, 바닥에는 검은색의 플라스틱 녹은 물이 흘러다녔다. 공기 질 측정기로는 가마 주변의 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게 불가능했고 가마 건너편 주택가에서 측정했을 때조차 최대 수치인 999가 나올 정도였다.
벽돌 공장에서 연료로 소모되는 유명 브랜드 의류들의 생산지 역시 캄보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남반구이기 십상이다. 현재 경제 활동이 가능한 연령대의 캄보디아 여성 5명 중 한 명이 의류 노동에 종사한다. 이들이 창문도 없는 열악한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안팎의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낸 의류들은 전 세계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가는 결국 벽돌 가마의 땔감으로 태워 없애지는 운명을 맞는다. 그렇게 생산된 벽돌은 다시 세계 각지로 팔려 나가 도시의 건물들을 세우는 데 쓰인다. 부유한 나라들은 자국에서 생산하는 비용보다 수입하는 비용이 싸기 때문에 캄보디아와 같은 나라들에서 벽돌을 수입한다. 그럼에도 민족국가 단위의 온실가스 배출량 집계나 건물의 에너지 성능 지침 등에서는 건축 자재인 벽돌의 생산과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은 배제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전 지구적 탄소 배출량의 5~10%를 차지하는 의류 산업의 기후적 부담 역시 그 옷의 소비자들이 사는 부유한 나라들이 아니라 옷을 만드는 가난한 나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탄소 배출을 유의미하게 추적하기 위해서는 공급망에서의 배출과 관련해 전 지구적인 관점을 취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가 캄보디아 벽돌 공장에서 확인한 사실을 영국 런던에서 전시 형태로 발표하자 관심 있는 시민들은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그의 답은 매우 비관적이다. “나는 소비자의 힘이 글로벌 경제를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활용품을 분리 수거하거나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는 것, 심지어는 비행기 탑승을 최소화하는 등의 ‘윤리적 소비’는 그다지 실효가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지금은 모두가 지속 가능성을 말하고 기업들 역시 앞다투어 ‘그린’과 생태를 표방하지만, 녹색 성장이 불가능한 것처럼 지속 가능한 소비 역시 한갓 아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급격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내놓는 녹색 메시지의 행간을 읽는 능력을 기르고, 글로벌 공급망이 감추고 있는 환경 파괴를 감시하고 규제할 법제를 마련하도록 목소리를 높이며, 무엇보다 “글로벌 공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기후 위기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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