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도 소녀였어…이 계절 익어가는 ‘몸’을 환대하다[책&생각]

한겨레 2024. 9. 6.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내 몸이 이상해졌다.

신체 내부에 범상치 않은 능력을 품고 있는 '기인'들과 그들을 돌봐주는 '휴지인'인 미용실 원장이 출연해 각자 다른 특색을 가진 몸에 대해 맛깔난 에피소드를 펼쳐나간다.

몸에 지진 같은 변화가 일었던 사춘기 시절, 옆에서 따뜻하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른이 한 명만 있었어도 그 낯선 사건을 축복이자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중생활
‘몸스터’에 수록
백이원 지음 l 스피리투스(2024)

중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내 몸이 이상해졌다. 없던 게 생겨나고, 있던 것의 형태가 변하고, 무언가가 비어져 나왔다. 무서운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해주었다. 변한 몸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알려주면서, 여자로서 인생을 망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사춘기라 불리던 시절, 몸에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는 그렇게 내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두렵고 불길한 사건으로. 이때 받았던 교육과 그와 함께 일었던 마음의 소용돌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 의식과 무의식에 박혔을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잠복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튀어나가 공격성을 발휘했을 것이다.

단편 ‘이중생활’은 ‘몸’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체 내부에 범상치 않은 능력을 품고 있는 ‘기인’들과 그들을 돌봐주는 ‘휴지인’인 미용실 원장이 출연해 각자 다른 특색을 가진 몸에 대해 맛깔난 에피소드를 펼쳐나간다. 대체로 영업이 끝난 늦은 시간에 헤어숍을 찾아오는 기인들은 방귀쟁이 며느리, 재주 많은 삼 형제, 아기 장수 등 다양하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알아도 모른 척하며 이 시대를 살아간다. 힘보다 정신, 몸보다 두뇌가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 이들은 곤란에 처하고 실직 상태가 된다. 그래도 맡은 바 임무를 다 하며 끈질기게 기인의 계보를 이어간다.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소환해 색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기발한 아이디어 소설의 외관을 띤 이 소설의 백미는 그러나, 중간에 헤어숍을 방문하는 ‘삼신할미’와 그를 맞는 원장의 기꺼운 환대이다.

소설 속에서 삼신할미는 십대 소녀의 외관을 하고 있다. 이마의 반점을 보기 전까지, 원장은 소녀가 삼신할미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마에 돋은 푸른 몽고반점을 보고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된 원장은 소녀가 지나가고 있을 사춘기 특유의 불안과 두려움을 다독여주려 애쓴다. 현실에서 삼신할미는 ‘춤 좀 춘다는 10대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스트리트 댄서다. 댄스 동아리를 이끄는 리더로 활약 중인데, 동아리 팀원들이 모두 이마를 드러내는 바람에 자신도 이마를 드러내야 하는 곤경에 처했다. 콤플렉스인 몽고반점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소녀는 고충을 토로하고, 원장은 이에 정공법으로 맞서는 법을 알려준다. ‘피부에 레이어를 쌓는다고 생각’하라며 화장법을 몸소 보여주지만, 그것은 실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살아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에.

온수에 몸을 담근 듯 훈훈한 느낌을 주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알았다. 몸에 지진 같은 변화가 일었던 사춘기 시절, 옆에서 따뜻하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른이 한 명만 있었어도 그 낯선 사건을 축복이자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우리가 과거의 자신과 같은 과정을 지나가는 십대에게 손을 내밀면, 그 순간 그 손길은 십대의 영혼에 작은 조각이 되어 박힌다. 그러니 이 짤막한 소설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살아온 선배가 조금 늦게 같은 길을 가는 후배에게 따뜻한 영혼 한 조각을 얹어주는 뭉클한 이야기.

정아은 작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