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확충에 152조 필요한데… 전기요금은 원가 못 미쳐

세종=정순구 기자 2024. 9.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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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걸린 전력 인프라] 〈하〉 한전 재무구조 악화일로
한전 부채 200조 年이자 4조 넘어
회사채 발행한도 늘려 버텼지만… 그마저도 3년뒤면 한계 부닥쳐
“인상 미루면 한꺼번에 더 올려야”
지난달 27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한전MCS 경기지사 직할 지점에서 관계자가 8월분 전기요금 고지서 발송 작업을 하고 있다. 수원=뉴스1

‘152조5000억 원+α(알파)’.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첨단산업 발전, 전기자동차 확대 등으로 급증하는 국내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전력망을 확충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다. 한국전력이 매년 1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야 하지만 한전의 재무 상태는 최악이다. 정원 감축과 임금 반납 등의 노력에도 한전의 부채는 200조 원을 넘겨 매년 4조 원대의 이자까지 부담해야 한다. ‘블랙아웃(대정전)’을 피하기 위해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 중인 전기요금 인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원가 이하 전기 공급에 누적 적자 급등

5일 한전에 따르면 전력 수요 증가세에 대응하기 위해 2036년까지 신규 송·변전 전력망 건설에 필요한 비용은 56조5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송·변전 전력망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변전소(고압의 전력을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저압으로 변환하는 시설)까지 보내는 설비를 뜻한다.

변전소에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력을 공급할 신규 배전망 설치에도 31조 원이 투입돼야 한다. 전력 설비 유지 보수비(65조 원)를 더하면 전력망 확충에 최소 152조 원이 넘는 비용이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순수하게 전력망 신규 건설 및 유지 보수만 고려한 금액이다. 전력망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보상안까지 고려하면 총금액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용은 100% 한전이 부담한다. 올해 6월 말 기준 총부채가 200조 원을 넘겼고 연간 이자 부담 비용만 4조5000억 원 이상인 한전의 재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4개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지만 한전의 재무구조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 2021년 한전의 전력판매 단가는 kWh(킬로와트시)당 108.1원으로 원가(122.2원)보다 14.1원 낮았다. 2022년에는 판매 단가와 원가의 격차가 62원으로 확대됐고 2023년에도 원가보다 14.9원 낮은 가격으로 판매됐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쌓인 한전의 적자는 43조 원에 달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MWh(메가와트시)당 약 130달러였다. 영국(452달러)과 독일(440달러), 체코(337달러), 프랑스(256달러), 미국(160달러) 등은 물론이고 OECD 회원국 평균(208달러)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 회사채 발행도 한계, 전기요금 인상 시급

막대한 적자가 누적된 한전은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며 버텨 왔지만 이마저도 곧 한계에 부닥칠 예정이다. 한국전력공사법상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까지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재무구조가 급속도로 악화하자 2022년 말 미봉책으로 발행 한도를 5배까지 늘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올해 1분기(1∼3월) 기준 한전채 발행 한도는 87조6000억 원, 한전채 잔액은 75조3000억 원 규모다. 임시로 발행 한도를 대폭 늘렸음에도 여유분이 12조3000억 원밖에 남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미봉책도 약 3년 뒤면 종료된다는 점이다. 개정된 한전법의 일몰 시점은 2027년 12월 31일이다.

2028년부터는 한전채 발행 한도가 다시 2배로 줄어든다. 올 1분기 기준 한전의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를 단순 고려하면 40조2600억 원을 상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상환에 실패할 경우 한전은 ‘디폴트(채무불이행)’라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한전은 정원 감축과 임금 반납 등 가능한 모든 노력을 했는데도 누적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전기요금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전력 업계는 한전이 전기요금을 kWh당 1원 인상하면 연간 영업이익이 55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의 누적 적자와 이자 비용이 계속 쌓이고 있어 전기요금 인상을 미룰수록 추후 더 큰 폭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게 된다”며 “지난달 물가상승률도 41개월 만에 가장 낮아진 만큼 이제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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