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의 섬’ 산골마을 고스게, 전 세계서 찾는 호텔 됐다

고스게=이상훈 특파원 2024. 9.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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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통한 더 나은 일상/우리들의 공간 복지]
〈8〉 일본 야마나시현 고스게촌
주민 589명뿐인 한적한 두메산골… 가까운 슈퍼까지 차로 30분 가야
150년 고택이 세계적 호텔로 변신… 마을 주민 모두가 호텔 집사 역할
연간 20만 명 찾는 관광지 발돋움


지난달 30일 일본 야마나시현 고스게(小菅)촌. 도쿄 도심에서 차로 2시간 이상 구불거리는 도로와 터널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산촌이다. 경기 부천시와 엇비슷한 면적(52.78k㎡)에 인구가 589명에 불과할 정도로 사람이 적고 교통도 불편하다. 현지에서는 이 지역을 ‘육지 속의 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작은 산간 마을 고스게촌은 최근 일본에서 ‘지방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인구 수백 명의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만든 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지역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일본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견학을 와 고스게촌의 성공 사례를 연구할 정도다.

● 소멸해 가던 산골 마을, 호텔로 부활

고스게촌은 도쿄 도심에서 직선 거리로 75km 떨어진 곳이다. 거리로만 따지면 수도권처럼 보이지만 상당수 일본인은 지명(地名)조차 알지 못하는 산골 마을. 도쿄에서 사용하는 물의 20%를 공급하는 인공 댐 오쿠타마(奥多摩)호 인근에 있고 고속도로, 철도가 닿지 않아 사람의 발길이 미치기 쉽지 않다. 1970년 1461명이던 인구는 54년이 지난 올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먹거리를 사러 슈퍼를 가려면 차로 30분을 가야 할 정도로 일본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시골이다.

2014년 어느 날, ‘대갓(大家)집’으로 불리던 마을 한가운데에 150년 된 큰 저택이 빈집이 됐다. 홀로 집을 지키던 할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지며 요양원에 갔고 자식들은 도시로 나가서 산 지 오래였다. 마을의 현관으로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집이 쓰러져 가는 걸 그대로 지켜볼 순 없었다. 할머니의 아들이 마을 촌장에게 “빈집을 활용하고 싶다”고 의뢰했다. 촌장은 지방 재생 컨설팅 회사 ‘사토유메(さとゆめ)’를 찾았다.

흔한 관광지 하나 없는 인적 드문 산골 마을의 커다란 빈집. 고민 끝에 회사는 자연 친화적인 호텔로 꾸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집 외관은 최대한 보존하면서 내부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디자인 가구 등으로 세련되게 꾸몄다. 비가 오던 취재 당일, 호텔로 꾸며진 옛 저택 마루에 앉으니 흔한 자동차 소음 하나 없이 빗소리만 집 전체에 가득했다.

이 저택은 빈집으로 방치될 뻔했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컨설팅 회사 등이 협력해 호텔로 꾸며졌다. 고스게=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빈집이 될 뻔한 저택이 호텔 ‘닛포니아 고스게 겐류노무라’로 탈바꿈하면서 ‘마을 전체를 호텔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요리 재료는 마을에서 키운 버섯 등 채소와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썼다. 자연스럽게 마을 농가와 협력 관계가 구축됐다. 관공서에서 정년 퇴임한 마을 주민이 가이드로 관광객과 함께 마을을 산책하고 산에 오른다. 호텔 정원 관리는 소방서에서 은퇴한 주민이 맡았다. 인근에 애물단지였던 국도 휴게소는 현지 특산물을 살 수 있는 매장이 됐다.

● 연간 관광객 20만 명 찾아

마을에 활기가 돌자, 사람이 되돌아왔다. 이 호텔 지배인 후루야 다쿠마(降矢拓磨)가 그렇다. 고스게 출신으로 도시에서 대학을 나와 취직했다가 고향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자 과감히 돌아왔다. 다른 호텔 근무자 4명은 타지 출신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왔다. 최근에는 도쿄 출신 부부가 놀러 왔다가 마을 풍광에 반해 정착을 결심했다고 한다.

후루야 지배인은 “일본인들은 잊고 있던 옛날 분위기를 느끼러, 외국인들은 관광객이 적고 일본만의 풍경을 느끼고 싶다며 이곳을 찾는다”고 소개했다. 2014년 연간 10만 명이던 관광객은 10년 만에 2배로 늘었다.

일본 야마나시현 고스게촌의 150년 된 저택을 활용한 호텔. 내부는 오래된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세련된 가구로 꾸며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고스게=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하루에 총 4개 팀, 1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미니 호텔이지만 인기가 높다. 1인당 1박에 3만5000엔(약 32만 원)으로 비싼 가격이지만 성수기에는 2∼3개월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다. 다른 지자체, 호텔 등에서 연간 20팀가량이 견학 올 정도로 일본 전역에서 주목받는 지역이 됐다.

고스게촌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일본 곳곳에서는 비슷한 방식의 지방 재생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있다. 가나가와현 바닷가 마을 미우라시는 100년 이상 된 옛집이나 오래된 창고를 료칸(旅館)으로 개조해 색다른 분위기로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작은 호텔로 상근 직원은 1명뿐이지만 청소부터 안내까지 마을 주민들을 시간제 등으로 채용하며 일자리를 창출했다.

고스게촌을 호텔로 바꾼 컨설팅 회사 사토유메는 일본 전역 50여 곳의 지역에서 비슷한 사업에 나섰다. 철도기업 JR동일본과 함께 도쿄 오쿠타마 산골 마을의 시골 역 ‘하토노스(鳩ノ巣)역’을 중심으로 인근에 레스토랑, 사우나, 미니호텔 등을 선보였다. 소멸해 가는 시골 역 인근 마을 전체를 관광 자원으로 만들어 현지 주민들과 함께 지역 재생을 추진하고 있다. 호텔이 들어선 오메(青梅)시의 오세마치 도시아키(大勢待利明) 시장은 “지역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관광 활성화에 기대가 크다”며 “지역 활성화를 위해 이런 사업이 계속 발전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고스게=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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