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미시간 무슬림 “바이든 찍었는데, 왜 이스라엘만 편드나”

디어본·앤아버(미시간주)/김은중 특파원 2024. 9. 6.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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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美 대선 경합지, 김은중 특파원 르포]
[3] 해리스에 등 돌리는 미시간州
미시간주 디어본에 있는 모스크 '이슬라믹 센터 오브 아메리카'. 북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디어본=김은중 특파원

“우리 마을엔 가자지구에서 고통을 겪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둔 주민이 제법 많습니다. 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직접 모금 행사를 열 정도죠. 말만 번지르르한 바이든과 해리스가 11월 대선에서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4일 미국 미시간주(州) 디어본의 ‘이슬라믹 센터 오브 아메리카’에서 만난 레바논계 미국인 서맨사씨는 “지난 1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전쟁은 멀리 떨어진 우리 지역 사회까지 집어삼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1963년 축성된 이곳은 북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모스크(이슬람교에서 예배하는 건물)다. 동시에 1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이 있다.

해리스도 방탄 유리로 경호 -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방탄 유리에 둘러싸였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인 해리스는 4일 뉴햄프셔주 노스 햄프턴 유세장에 설치된 3면짜리 대형 방탄 유리 뒤에서 “중소기업은 미국 경제 필수 기반으로 창업 인센티브를 늘려가겠다”고 했다.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대규모 야외 유세에 나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지난 7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야외 유세 도중 피격된 사건을 계기로 대선 후보의 야외 유세장엔 방탄 유리를 설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디트로이트 근교의 디어본은 2020년 기준 인구 약 11만명 중 절반 이상인 54%가 중동·아프리카계인 미국 최초의 ‘아랍계 과반 도시’이자, 미국 내 최대 무슬림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다. 커피숍, 정육점, 레스토랑 등 거의 모든 상점에 아랍어·영어가 병기돼 있었고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바쁜 모습으로 거리를 오갔다. 미시간주의 이슬람 인구는 약 40만명으로 4%를 차지한다. 미국 전체 비율(1%, 약 440만명)의 네 배를 넘는 수준이다. 주류라고 보긴 어렵지만 미시간주가 11월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박빙의 접전을 벌이는 경합주 7곳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슬람 유권자들이 ‘캐스팅 보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날 본지와 만난 주민들은 조 바이든 정부의 친(親)이스라엘 일변도 정책을 문제 삼으며 “11월 대선에서 어떻게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구 1000만명인 미시간은 1992년 이후 24년 동안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이른바 ‘블루 월(blue wall·민주당 철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16년 공화당 트럼프가 0.22%포인트 차로 탈환을 했고, 현재는 경합주로 분류된다. 4년 전엔 바이든이 2%포인트 차로 재탈환에 성공했고, 대선을 두 달여 앞둔 현재도 다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해리스가 트럼프를 소폭 앞서고 있다. 하지만 약 40만명의 이슬람 유권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 교착 상태에 빠진 휴전 협상, 가자지구 내 인도적 위기 등을 이유로 정부에 갖는 불만이 상당해 해리스가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9일엔 유세 도중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난입하자 해리스가 흥분해 “트럼프가 이기길 원하면 계속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의 한 모스크(이슬람 예배당)에서 4일 카미르 칸씨가 고개 숙여 기도하고 있다. 디어본은 전체 인구 중 이슬람 교도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곳 주민들은 계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지역사회에도 큰 충격을 줬다고 했다. /디어본=김은중 특파원
그래픽=김하경
4일 미시간주 디어본에 있는 모스크 '이슬라믹 센터 오브 디트로이트'에서 무슬림들인 아랍계 미국인들이 예배를 하고 있다. /디어본=김은중 특파원

미시간주 유권자의 13.2%(10만1499표)는 지난 2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항의의 뜻을 담아 당시 사실상 단일 후보였던 바이든이 아닌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을 선택했다. 당시 디어본 일대에선 ‘지지 후보 없음’을 선택한 표가 바이든을 선택한 표보다 많았다. 선거인단 15명이 걸려 있는 미시간에서 무슬림 유권자들이 결집하면 얼마든지 ‘캐스팅 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예멘계인 카미르 칸씨는 “해리스의 중동 정책은 바이든과 차이가 없고, 민주당 소속인 그레천 휘트머 주지사는 가자지구 학살을 학살이라고 말하지도 못한다”며 “11월 선거는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 편에 서서 이스라엘의 입장만을 충실하게 대변한 정부를 심판할 기회”라고 했다.

디어본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약 1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앤아버에서도 4년 전 바이든 당선의 원동력이 됐던 청년 유권자들의 민심 이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동안 거셌던 대학가 반전(反戰) 시위가 대부분 잠잠해졌지만, 미시간대는 예외다. 새 학기 개학을 앞둔 지난달 28일 친팔레스타인 단체 90여 곳이 미시간대 캠퍼스 안에서 가자지구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 네 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4일 오후에도 ‘팔레스타인을 위한 앤아버 커뮤니티’ ‘미시간 유대인의 소리’ 같은 반전 단체 소속 학생과 회원들이 “가자지구에서 아이 1만5000명이 죽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리암씨는 “학교 측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학생들 얘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있다. 대학 기금의 투자 내역을 공개하고,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모든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고 했다.

미국 미시간대 재학생 리암씨가 4일 캠퍼스에서 ‘가자지구에서 1만5000명의 어린이가 죽었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반전(反戰) 시위를 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주둔지다. /앤아버=김은중 특파원
그래픽=김하경

4년 전 대선 당시 CNN이 실시한 미시간 출구 조사를 보면 18~29세 유권자의 61%가 바이든에게 몰표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유권자들이 미시간의 색깔을 빨강(공화당)에서 파랑(민주당)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들이 이탈하면 해리스가 미시간을 수성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시간대 2학년인 자와드 알리는 “해리스가 비욘세 노래를 틀고, 바이든이 테일러 스위프트 얘기만 한다고 해서 우리가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기권하는 것도 항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4월 이코노미스트와 유거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청년 중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는 응답이 32%로 전 연령대(16%)보다 훨씬 높았다. 친이스라엘 기조가 이슬람 유권자뿐 아니라 젊은 유권자들의 표를 떠나게 할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바이든은 6일 앤아버를 찾아 유권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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