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K팝의 성공 비결로 K정치를 개조할 순 없을까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2024. 9. 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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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신화, 한국현대사 압축판
저급한 모방단계 넘어
각고 노력으로 첨단까지
빌보드 1위 찍은 BTS 노래처럼
내로남불과 부족주의의
한국 정치 날려버릴
“다다, 다이나마이트” 없나
2023 서울페스타의 K팝 콘서트 모습. /서울시

신학기 대학 캠퍼스엔 늘 패기와 희망이 넘친다. 분주히 오가는 젊은 학생들의 틈에 끼일 때면 길을 잃고 제자리를 맴돌 때가 있다. 이번 학기 첫날도 그래야만 했다. 학생 기숙사 한구석에서 K팝이 울려 퍼져 그 소리를 듣고 있는데, 지나가는 푸른 눈의 학생이 그 노랫말을 따라서 흥얼대고 있지 뭔가. 모국어가 노랫말이 되어 이역만리 먼 나라 젊은이의 입술에서 읊조려지는 현실을 직접 듣고 확인하는 체험은 걸음을 멈출 만큼 큰 사건이었다. 1980년대 한국에서 나와 내 친구들은 밤낮으로 외국 팝송을 들으며 10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K팝의 성공 신화는 놀랍고도 신비롭다. 과거 한국은 밀려드는 외국의 대중음악을 싹둑싹둑 가위질하던 나라였다. 이제 한국은 전 세계로 새로운 사운드를 전파하는 나라가 됐다. 한 세대 만에 일어난 이 혁명적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까?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성의 발현인가? 천재 음악가들의 창의력 덕분인가? 스파르타식 지옥 훈련의 결과인가?

사람마다 일가견이 있겠지만, 뒤섞임과 어울림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팝뮤직 거장들은 여러 전통 사운드를 혼합하는 다채로운 음악적 실험을 거듭한다. 비틀스의 명곡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은 믹솔리디아 음계에 인도의 현악기 시타(sitar) 소리를 얹었다. 폴 사이먼의 명반 ‘그레이스랜드(Graceland)’는 루이지애나 사운드에 요하네스버그의 리듬을 접붙였다. K팝엔 록, 팝, 랩, 힙합, 발라드, R&B 등 모든 장르가 섞여 있다. 그 사운드의 뿌리는 1950년대의 로큰롤을 거쳐 재즈, 블루스, 부기우기 등 1920년대 블랙 음악으로 소급된다. 국적·시대 불문하고 뭐든 ‘쿨’하면 다 갖다 쓴다. 바로 그런 열린 태도와 합성적 상상력(synthetic imagination)이 K팝에 흐른다.

패션 감각도 큰 몫을 했다. 팝뮤직은 공감각적 패션의 총화다. 어디선가 시작된 패션은 흘러내리고(trickle-down), 가로지르고(trickle-across), 거슬러 오르며(trickle-up)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트렌드를 끌어가며 패션을 주도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가면 뒤처지고 앞서가면 외면당한다. K팝은 의상, 댄스, 손짓, 몸짓, 창법, 색감, 빛깔, 끝손질의 터치까지 섬세하게 잘 빚어 만든 패션 상품이다. 힙(hip)해서 히트치고, 시크(chic)해서 어필한다.

메시지의 보편성도 무시할 수 없다. 팝뮤직은 화성과 리듬만큼 노랫말이 중요하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K팝의 노랫말은 통속적이지만 비루하지 않고, 충격적일지언정 반사회적이진 않다. 한 소절 한 소절 한국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시적 증거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K팝의 성공 신화는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한국의 뮤지션들은 “빽판”을 “듣고 따는” 원시적 훈련으로 팝뮤직의 문리를 터득했고, ‘카피’하고 ‘커버’하는 훈련생의 노력으로 나름의 사운드를 개척했다. 그 모습은 외국 상품을 들입다 베끼고 마구 갖다 쓰던 저급한 모방의 단계를 넘어 각고의 노력으로 첨단의 신제품을 개발한 한국의 기술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70여 년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모든 나라와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 국가로 성장했다. K팝의 성공이 말해주듯 대한민국의 성공 비결은 개방주의, 국제 연대, 범인류적 가치의 추구였다. 이제 한국인들은 열린 마음으로 세련된 감각을 키워 세계인과 어울려 사는 코즈모폴리턴이 되었다. 진취적 기업가 정신, 창의적 예술혼, 열린 사회의 문화 교양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저력이다. 신학기 캠퍼스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모국어 노랫말을 듣고 나서 뭉클한 감동에 젖어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역시나 문제는 정치인들이다. 눈 부라리며 고함지르고, 버럭 성내며 삿대질하고, 잘 모르면서 막 우겨대고, 편 갈라치며 뻥튀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기괴하고 촌스럽다. 침 튀기며 막말을 내뱉어 그 내용을 뜯어보니 케케묵은 이념 논쟁에 고리타분한 마녀사냥밖에 없다. 거친 태도, 낡은 감각, 특권 의식과 부족주의가 그들의 영업 비밀인가. 권모술수, 허위 선동, 내로남불의 이중 잣대가 그들의 생존 방식인가. 팬데믹으로 전 지구가 어수선할 때 빌보드 핫 차트 1위에 올랐던 BTS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무한 반복되는 그들의 흘러간 레퍼토리를 싹 쓸어버릴 K정치의 “다다다다 다이나마이트”는 진정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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