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일송정 푸른 솔처럼 변치 않는 애국혼을 만나다

유승현 2024. 9. 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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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가 모여 형성된 연변 백두산 일대 녹연담·천지폭포 등 장관
일송정·봉오동 전투지·명동촌 곳곳 숭고한 독립정신 발자취 간직
 일송정에서 내려다 본 해란강 

올해 정부가 주최한 제79회 광복절 경축식은 광복회 등 관련 단체와 야당이 불참한 데 대해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광복회가 정부 차원의 광복절 기념행사에 불참한 것은 1965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독립운동가 선조들이 ‘건국논란’을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전투와 고귀한 희생 정신이 서린 중국 항일유적지를 탐방하며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간도 항일유적지를 소개한다.

■ 민족의 영산 ‘백두산’

북한 량강도 삼지연시와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사이에 있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북파·서파·남파 3 코스가 있다. 동파코스는 북한에 속해 있다. 그 중에서도 북파코스는 가장 먼저 개발된 코스이며, 차를 타고 백두산 천문봉(약 2750m) 입구까지 갈 수 있어 많은 방문객들이 이 코스를 이용한다. 입장료는 6만원 정도이며 차를 두 번 갈아타면 천문봉 입구에 이른다. 입구에서 천문봉까지 오르는 A·B 코스가 있다. A코스는 B코스보다 천지를 조금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각 코스 모두 오르는데 10여 분 정도 소요되므로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조선말기부터 이주한 우리 민족이 개척하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형성된 연변은 1952년 조선족자치지구로, 1955년에는 돈화현과 합병되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칭됐다. 간판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해야 하며, 몇 해전까지도 학교의 제1언어는 한국어였다. 현재는 중국어로, 한국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조선족들 사이에선 일제강점기 총을 들고 싸운 이들이 조선족 1세대 영웅이라면, 2·3세대의 영웅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둘러싼 이 연변지역을 떠나지 않고, 한국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이라고 말할 정도다.

천문봉 입구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를 수 있는 녹연담은 푸른 물빛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녹연담은 천지 물이 지하수로 흐르다가 용출돼 26m 높이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이룬 연못이다.이곳엔 식당이 있어 오전에 천지를 찾은 이들은 점심식사를 해결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녹연담에서 내려오는 길에 백두산의 가장 큰 폭포, 천지 폭포가 기다리고 있다. 68m 높이 단층절벽에서 쏟아지는 천지 폭포는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20여분간 계단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이 폭포를 오르는 길에 백두산이 활화산임을 실감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유황냄새가 코를 스치며 온천수가 곳곳에서 샘솟는 풍경이다. 뜨거운 지열이 지하수를 데워 피워 오르는 연기와 바로 옆 천지 폭포의 물이 흐르는 진귀한 광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온천수로 삶은 유황계란(3개들이 10위안)은 여행의 별미다.

 천지(장백)폭포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는 유황온천이 흐르는 모습

■ 봉오동 전투 전적지

중국 도문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12㎞정도 가면 봉오동 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 위쪽의 산악지대가 바로 봉오동 전투지이다. 이곳에 봉오동 전투기념비 등이 있는데 현재는 취수보호 등의 이유로 저수지 출입이 제한돼 있어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볼 수 밖에 없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봉오동에서 대한북로독군부 및 대한신민단으로 구성된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월강추격대대를 상대로 유인 매복 작전을 펼쳐 대승한 전투다. 특히 조선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한 전투로 민족의 독립 의지와 사기를 드높였다.

일송정

■ ‘선구자’ 노래 따라 떠나는 항일 유적지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선구자 가사 중

독립운동가를 묘사한 노래 ‘선구자’ 가사에 나오는 일송정은 용정시 서쪽으로 약 3㎞ 떨어진 ‘비암산 풍경구’ 안에 자리하고 있다. 비암산 풍경구 입장료는 30위안이다.

풍경구 입구에서부터 일송정까지 걸으면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30위안을 더 내고, 카트를 타면 10여분 만에 일송정 비석이 세워진 곳에 도착할 수 있다. 비석에서부터 5분 정도 걸으면 비암산 정상에 있는 일송정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산 정상에 독야청청 우뚝 선 모습이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그 모양이 정자를 닮아 일송정이라 명명됐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이 소나무 아래서 작전회의를 많이 했는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군이 출동하면 사방으로 흩어져 쉽사리 붙잡히지 않았다. 이에 1938년 일제는 이 소나무를 고사시켰다.

1991년 용정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함께 이 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었으며, 현재의 정자를 세웠다. 이곳에 오르면 해란강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이 세운 철길, 개척한 논 등이 한 눈에 펼쳐진다.

명동촌 윤동주 시인 시비

■ 저항시인 윤동주의 생가가 있는 명동촌

용정시에 서남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자리한 명동촌은 1899년 문치정·남위언·김하규·김약연(윤동주의 외조부) 등 네 집안이 집단으로 이주해 형성됐다. 이어 1900년 윤동주의 조부 윤하현이 이곳으로 이사 했다. 1917년 윤동주가, 1918년 문익환 목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동쪽(한반도)을 밝힌다’라는 뜻이 담긴 명동촌은 1910~1920년대 동간도의 대표적인 한인 촌락이다. 이곳에 서전서숙을 시작으로 명동서숙, 신흥학교, 대성학교 등 민족교육을 위한 학교들과 명동교회가 설립됐다. 명동촌 입장료는 40위안이다. 내부에는 문익환 목사가 우리말 교육을 했던 교육관과 무궁화 문양이 새겨진 기와집 윤동주 생가가 있으며, 곳곳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다.

윤동주 생가 근처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작은 매점이 있는데, 그 곳에서 북한 대동강 맥주를 맛볼 수 있다.
 

 15만원 탈취사건 기념비 

 ■ 3·13 반일운동에서 이어진 15만원 탈취사건

용정시에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3·13 반일운동 의사릉은 1919년 3월 13일 용정을 중심으로 조선인 2만여명이 벌인 만세운동에서 산화한 13명 열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15만원 탈취사건은 3·13 반일운동 후 독립운동이 무장투쟁으로 전환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군자금 마련을 위해 1920년 1월 4일 철혈광복단원들이 조선은행 용정출장소로 철도부설 자금을 수송하는 마차를 습격,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에게 도로 빼앗겼다. 15만원은 현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00억원 이상으로, 당시 수천명의 독립군이 무장할 수 있는 돈이었다.

1990년 용정 3·13기념사업회 등이 15만원을 탈취한 장소에 기념비를 세웠다. 하지만 현재 3·13 반일운동 의사릉에는 묘비가 없고, 15만원 탈취사건 기념비 일부는 파손돼 있다. 또 두 곳 모두 도로 옆에 덩그러니 자리해 있으며,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잘 보이지 않는 등 관리 되고 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중국 지린성/유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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