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플라스틱 VS 종이빨대

김윤주 기자 2024. 9.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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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진영

플라스틱 빨대보다 종이 빨대가 환경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환경부 용역 보고서가 나왔다. 종이 빨대는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물론, 산성화, 담수 생태 독성, 인간 독성, 부영양화 항목에서 플라스틱 빨대보다 환경에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 빨대뿐이 아니다. 종이컵, 종이 접시 등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많은 종이 일회용품은 플라스틱만큼, 때때로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더 해롭다. 종이에 음식, 음료 등을 담기 위해 겉에 코팅을 하는데 이 코팅에서 유해 물질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선 결국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다소 생소했던 종이 빨대는 2021년 환경부가 ‘빨대 규제’를 들고나오면서 일상 곳곳에 자리 잡았다. 환경부는 원래 작년 11월부터 카페 내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한다는 계획이었다. 대체품인 종이 빨대 개발도 독려했다. 그런데 작년 11월 소비자 불만과 대체품의 비싼 가격을 이유로 들며 이 계획을 돌연 철회했다. 이후 언제 다시 규제를 되살릴 것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선의의 피해자가 생겼다. 종이 빨대 업체 사장들이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자신은 종이 빨대 업체 사장인데, 종이 빨대가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기사를 쓰면 누가 종이 빨대를 쓰겠냐는 것이었다. “내가 개발한 종이 빨대는 생분해가 돼 환경 영향이 적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반박도 틀린 건 아니다. 생분해되는 종이 빨대라면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을 수도 있다. 환경부 보고서에서도 플라스틱 빨대는 썩지 않는다는 점과 바다거북 같은 해양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은 반영하지 못했다고 썼다.

그럼에도 환경부의 규제 유예로 이들이 ‘돌 맞은 개구리’가 된 것은 분명하다. 비싸고 음료 맛을 떨어트리는 종이 빨대는 카페 주인의 선택도, 손님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종이 빨대 공장이 규제 유예 이후 쌓이는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파산 위기에 놓인 빨대 공장 사장님들을 위해 지자체에서는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공기관에서 종이 빨대를 쓰도록 독려하고 있다. 일회용품을 쓰지 말라고 해야 할 국가 기관이 오히려 일회용품 사용을 독려하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애초에 환경부가 플라스틱 빨대를 다회용 빨대로 대체했거나 빨대 사용량 자체를 줄이려고 했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 플라스틱 빨대나 종이 빨대나 쓰고 나면 쓰레기인 것은 마찬가지다. 차라리 ‘일회용품을 덜 쓰자’는 당연한 소리가 어설픈 규제보다 낫지 않았을까. 쌓인 종이 빨대는 결국 또 쓰레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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