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79] 전함 미주리와 한국의 인연
1945년 9월 2일 도쿄만(灣)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USS Missouri)’에서 함상 항복 조인식이 거행된다. 일본의 패망과 전쟁 종료를 공식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날 일본의 항복 서명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함으로써 한국 병합을 공식 포기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반도의 법적 지위 측면에서는 8월 15일보다 의미 있는 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9월 2일을 ‘대(對)일 승전 기념일(Victory over Japan Day)’로 기념한다.
미주리가 조인식 장소가 된 데에는 트루먼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원폭 투하 결정으로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낸 트루먼은 미주리주 출신이다. 44년 1월 브루클린 해군 병기창에서 열린 진수식에서 당시 미주리주 상원 의원 트루먼은 “전함 미주리가 함포에서 불을 뿜으며 도쿄만에 입성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 바 있다. 미주리의 대모 역할을 맡은 여성도 트루먼의 딸이었다. ‘마이티 모(Mighty Mo•미주리의 애칭)’에서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트루먼에게 자기 예언의 실현과도 같은 의미가 있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미주리의 활약은 한반도로 이어진다. 한국전쟁 발발 후 한반도에 가장 먼저 투입된 전함이 미주리였다. 9월 15일 삼척 포격을 시작으로 인천 상륙작전, 흥남 철수 작전 등에 참가한 미주리는, 잠시 휴식기를 빼면 1953년 3월까지 유엔군 함대의 기함으로 종횡무진 한반도 해역을 누비며 자유 진영의 수호자가 되었다.
공산 진영의 침략에 강력한 대응을 천명한 트루먼의 용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미주리는 현재 하와이 진주만에서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주리의 모토는 ‘자유를 위한 힘(Strength for Freedom)’이다. 한국의 독립과 생존, 그리고 번영을 가능케 한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생각할 때 이만큼 상징적인 장소도 없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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