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전쟁과 ‘강대국’ 러시아

2024. 9. 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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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대제 ‘대북방전쟁’ 통해
일약 유럽의 강대국으로 우뚝
제국 꿈꾸는 푸틴의 우크라전쟁
러시아 미래 결정짓는 변곡점

국가와 전쟁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로마제국은 무수한 전쟁을 통해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에까지 판도를 넓혔다. 중국에서 명멸한 많은 왕조들은 전쟁을 통해 분열과 통합의 길항작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공할 위력의 기병을 앞세워 적을 제압했던 칭기즈칸과 그 후예들은 수많은 전쟁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 대제국을 건설했다.

근대 국가의 탄생과 성장도 전쟁과 관련성이 높다. 미국은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 국가로 출범한 이후 스페인과의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아메리카 대륙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강자로 떠오른 독일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강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유럽 대륙의 패권국가로 인정받고자 했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는 어떤가. 러시아야말로 전쟁을 통해 성장과 쇠퇴를 반복했다. 전쟁이 러시아 국가의 역사를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세기 말 무렵 북유럽의 강대국 스웨덴으로부터 경제적 수탈을 당하고 안보 위협에 시달리던 러시아의 표트르대제는 ‘대북방전쟁’을 치르게 된다. 초기의 열세를 딛고 러시아군은 마침내 칼 12세가 이끌던 스웨덴군을 격파해 1721년 대북방전쟁에서 승리를 확정했고 러시아는 일약 유럽의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1812년 나폴레옹은 유럽 정복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보급 실패와 일찍 들이닥친 혹한의 날씨로 인해 엄청난 병력을 잃었다. 게다가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가 칭송해 마지않는 러시아 민중들의 ‘영웅적인’ 저항은 프랑스군에게 궤멸적 패배를 안기고 나폴레옹을 파멸의 길로 내몰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유럽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굳혔다.

2차 대전에서의 승전은 더 극적이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군은 불가침 협정의 약속을 깨고 ‘바르바로사 작전’을 감행함으로써 소련과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스탈린의 소련은 총력전을 펼쳐 나치의 침공에 맞섰다.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2700만명이 넘는 희생을 치른 끝에 소련은 독일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대애국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은 파죽지세로 동유럽을 거쳐 베를린까지 진격했다. 소련의 붉은 군대는 동유럽 국가들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전쟁은 러시아인들을 결집시키고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도약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2년 반을 훌쩍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가. 이전의 전쟁들과 달리 이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웃 슬라브 형제국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그것을 토대로 유라시아 지역의 맹주 겸 글로벌 강대국으로의 도약을 꿈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꿈의 실현 여부는 불확실해 보인다.

더구나 최근의 전황은 러시아의 그러한 야망에 또 다른 그림자를 드리우는 듯하다. 지난 8월 6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의 접경 지역인 쿠르스크주를 전격적으로 공격해 서울의 2배가 넘는 영토를 점령하고 러시아 병사 수백명을 포로로 붙잡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외국군에 의해 러시아 본토가 점령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로서는 본토의 일부를 점령당한 충격파가 적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핍박 또는 침략에 대항한 전쟁에서 조국을 지켜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침략을 당할 때마다 그들은 애국의 기치 아래 일치단결했고 병사들은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될까. 애국심과 단결력을 고취시켜 러시아를 글로벌 강대국으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소련을 수렁에 빠뜨린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재판(再版)이 될 것인가.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전쟁이 ‘제국’ 부활을 꿈꾸는 푸틴의 야심에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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