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좋은 계란을 고집하는 이유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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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혼자 살 때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동네 반찬가게 아줌마들과 친해지기'였다.
어떤 식으로든 아침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체질이었던 나는 기계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전기밥솥 기능을 마스터하는 데 성공했다.
아내를 만나 살림을 합치고 결혼을 한 뒤부터 식생활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를 없앤 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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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혼자 살 때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동네 반찬가게 아줌마들과 친해지기'였다. 어떤 식으로든 아침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체질이었던 나는 기계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 전기밥솥 기능을 마스터하는 데 성공했다. 고되기로 소문난 광고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밤늦게 들어오면서도 잊지 않고 쌀을 일어 전기밥솥에 안친 뒤 '예약취사 버튼'을 누르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아내를 만나 살림을 합치고 결혼을 한 뒤부터 식생활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를 없앤 후부터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아내의 동의를 얻은 뒤 멀쩡한 전자제품을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가져다드렸다. "집에 전자레인지가 하나 남는데 혹시 필요하면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쌍수를 들어 환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밥은 냄비나 솥에 그때그때 해 먹기로 했고(전기밥솥은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렸다) 전자레인지가 필요한 음식은 찜기로 대체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이라지만 하루 세 끼 밥을 먹는다는 게 단지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자각이 들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출판기획자인 아내가 요리활동가 고은정 선생이 펼친 인문학 기반의 식재료 강연을 들은 뒤 우리들의 식생활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다.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 담근 장이나 김치는 마트에서 사 먹는 음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음식을 약으로 삼으라"라고 했던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나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던 브리아 사바랭의 말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 인생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질과 품격이 달라진다.
이는 독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렸을 때부터 양질의 동화책과 고전 등을 골고루 접하고 자란 사람은 교과서·참고서만 파던 우등생과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부터 다르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책이나 영화·연극 등 문화상품도 평소에 어떤 걸 섭취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커다란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아내가 집에서 밥을 해 먹을 땐 질 좋은 계란을 고집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녀는 말한다. 어쩌다 먹는 비싼 요리보다는 매일 먹는 좋은 식재료가 진짜 건강한 몸을 만든다고. 그것도 하루아침엔 불가능하고 꾸준히 오래 섭취해야만 내 것이 된다고.
지난주에 아내가 극단 골목길에서 올리는 연극 '구름을 타고 가는 소녀들'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도시락 한 끼를 주문해서 보냈다. 아내와 나 둘 다 극단을 이끄는 박근형 작가의 열혈팬인 데다가 우리가 이 극단의 연극을 통해 그동안 섭취한 문화적 양식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보답 차원으로 결정한 일이다. 최고급 샌드위치 도시락은 우리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성북동 티움의 우수정 셰프에게 부탁을 했다. 식재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내이기에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이어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최고의 정신적 양식을 공급해 주는 극단에 최고의 도시락을! 이거야말로 선순환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연극을 보자. 그게 바람직한 인생이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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