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랭킹 96위에 충격 쩔쩔…홍명보 "월드컵 16강 이상"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외쳤나 [SPO 현장]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박대성 기자] "한국 대표팀이 원정에서 거뒀던 가장 좋은 성적이 16강이었다. 우리는 16강보다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홍명보 감독)
홍명보 감독이 숱한 논란 끝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험난한 월드컵 최종 예선이지만, 홈에서 첫 경기는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다.
한국은 5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1차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6위 팔레스타인과 0-0으로 비겼다. 홈에서 기분 좋은 출발로 월드컵 11회 연속 본선 진출을 노리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한국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시절부터 월드컵 본선을 향한 닻을 올렸다.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 중국, 태국, 싱가포르를 제치고 조 1위(5승 1무 승점 16)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뒤에 황선홍, 김도훈 임시 감독 체제로 경기를 이어갔지만 유럽 내 톱 클래스 선수들이 즐비했기에 무난하게 이길 수 있었다.
이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맞이했다. 한국은 이라크, 요르단,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 등 중동 5개국과 한 조에 속했다. 월드컵 본선 11회 진출을 위해서 홈에서 첫 경기에 결과가 중요했지만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한국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한 수 아래지만 유럽에서 귀화한 선수들도 몇몇 포지션에 있는 만큼 한 방이 있는 팀이다.
홍명보 감독은 부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5개월 동안 감독 선임에 난항을 겪었고 외국인 감독들이 한국 대표팀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이임생 기술이사의 '읍소'로 단 3일 만에 마음을 바꿨다.
홍명보 감독은 "10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실패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울산HD 감독 등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기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면 어디까지 바라보냐는 질문에 "한국 대표팀이 원정 월드컵에서 해냈던 가장 좋은 성적이 16강이었다. 우리는 16강보다 더 나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답했다.
'나를 버렸다'는 홍명보 감독에게 팔레스타인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경기 전 선발 라인업에 따르면 울산HD에서 지도했던 공격수 주민규를 톱에 뒀다. 손흥민, 이재성, 이강인이 한 칸 뒤에서 화력을 지원했고 황인범과 정우영이 공격과 수비를 조율했다. 수비는 설영우, 김영권, 김민재, 황문기였고 골키퍼 장갑은 조현우가 꼈다.
한국은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마자 팔레스타인을 압박했다.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서 볼을 잡고 전진했고 오버래핑으로 올라온 풀백들과 공격형 미드필더와 호흡했다. 팔레스타인은 두 줄 수비로 웅크린 뒤 카운터 어택으로 배후 공간을 타격하려는 모양새였다.
팔레스타인은 간헐적인 압박을 걸었지만 베테랑 미드필더 정우영이 여유롭게 풀어나와 공격을 전개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게는 한 방이 있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가져온 뒤 한 템포 빠르게 박스 안에 볼을 투입했다.
전반 10분 정우영이 3선에서 볼을 운반하다가 팔레스타인에 볼이 빼앗겼다. 자칫 손쉽게 역습을 허용할 상황이었지만 김민재가 빠르게 들어와 끊어냈다. 2분 뒤에는 팔레스타인과 공중볼 다툼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며 쉽게 뒷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한국은 좀처럼 이렇다 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손흥민이 분투했고 황인범이 허리에서 투혼을 다해 뛰었지만 골문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전반 22분, 팔레스타인이 세트피스 기회를 얻었고 한국 골망을 흔드는 일이 있었다.
순간 상암에 모인 6만 관중 함성이 잠시 정적이었다. 팔레스타인 선수들이 득점 같은 모습으로 환호하자 정적이 있었다. 비디오판독시스템(VAR) 결과 오프사이드로 선언돼 팔레스타인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은 이후에도 간헐적인 역습으로 한국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민재는 열정적으로 한국 포백 라인을 지휘했다. 틈이 나면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라인을 재정비하려고 애를 썼다. 팔레스타인 공격에 도전적으로 다가서며 볼을 끊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수비와 몸싸움에서 밀리며 순간적으로 배후 공간을 노출했다.
홍명보 감독은 후반 시작 휘슬이 울리자 주민규를 빼고 오세훈을 넣었다. 하지만 공격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다. 후방에서 '라볼피아나'로 공격을 전개하기도 했지만 영향력이 없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이 순간적인 압박에 볼을 끊어내 한국 골망을 위협하기도 했다.
홍명보 감독은 후반 11분 이재성을 빼고 황희찬을 투입했다. 손흥민·이강인이 분투해도 전방에서 이렇다 할 공격 옵션을 가져가지 못했기에 공격수 한 명을 더 투입해 팔레스타인을 찍어 누르려고 했다.
한국은 후반 14분 완벽한 오픈찬스를 만들었다. 왼쪽에서 손흥민 등이 팔레스타인 수비 시선을 끌었고 이강인에게 순간적으로 볼이 전달됐다. 거의 골키퍼와 1대1 상황. 이강인의 왼발이라면 충분히 골망을 뒤흔들 수 있었지만 볼이 공중으로 뜨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한국은 점점 주도권을 잡았지만 만들어진 공격보다는 얼리 크로스→헤더에 의존하는 패턴이었다. 오세훈이 측면에서 크로스를 받아 헤더로 팔레스타인 골망을 조준했지만 골키퍼 손에 막혀 고개를 떨궜다.
전술적인 대응력과 한 수 아래 팀을 압도하지 못했지만, 이강인만큼은 톱 클래스 영향력을 발휘했다. 전반부터 한국 2선에서 좌우 전환과 정확한 크로스로 팀을 지휘했고 후반 29분 팔레스타인 골키퍼 손끝에 맞았지만, 골문 구석으로 향하는 날카로운 직접 프리킥까지 보여줬다.
홍명보 감독에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설영우가 상대 팀과 충돌해 한동안 그라운드에 쓰러졌고 더는 경기를 뛸 수 없었다. 이명재를 투입해 설영우 공백을 메워야 했다.
손흥민이 후반 41분 전력 질주를 하며 팔레스타인 박스 안까지 침투했다. 골키퍼까지 제치면서 드디어 득점이 터지는 듯 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결정력이라면 충분히 득점할 수 있었지만 야속하게 골대를 강타하면서 득점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박스 앞에서 볼을 잡았지만 상대 수비벽에 막혀 슈팅 각을 만들 수 없었다.
논란 속에도 자신있게 출발했던 홍명보 감독의 첫 경기는 야유 폭탄에 무기력한 부진으로 끝났다. 아직 지휘봉을 잡은 지 얼마되지 않아 짧은 대표팀 소집에 전술을 녹이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명분이 있다. 오만 원정에서는 반드시 반등해야 그나마 뿔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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