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개미에 관한 명상
폭염이 가까스로 물러가고 더위의 소굴인 공중을 보다가 시선을 대폭 낮춘다. 목청껏 울던 매미소리가 내년을 기약하며 점점 잦아진다. 이젠 대지를 보아야 할 때, 바닥은 언제나 든든하다. 나무도 풀도 작년 낙엽도 여전하지만 오늘은 개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개미는 蟻(의)다. 벌레를 뜻하는 부수(훼)와 옳을 의(義)자의 결합이다. 함부로 정한 이름은 세상에 없다. 저 작은 미물 개미에 왜 저런 견결한 뜻을 부여했을까. 이사하고 어수선한 방을 쓸어낼 때 개미 한 마리가 구석에서 어리둥절 나오기도 한다. 옛날이라면 발로 밟거나 손톱을 쓰겠지만 이젠 그럴 일 없겠다. 어느새 내 뇌 속에 제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은 개미. 그냥 쓰레받기에 먼지와 함께 실어 밖으로 내보낸다. 개미는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 탄력성이 있다.
이참에 죽음에 관해서도 생각해 본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착각은 참으로 대단하다. 둥근 대지를 납작하게 여기고 해가 뜨고 지는 줄로 아는 것. 죽음 또한 그렇다. 끝내 그 말 한마디 못하고, 마지막 그 물 한방울 넘기지 못해 목구멍이 닫히는 현상 아닌가. 그런 망자가 어디를 떠나겠는가. 그만을 거기에 두고 우리만 여기로 떠나온 것. 그러니 나중에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을 때, 내 곁으로 가장 먼저 찾아오는 이도 개미일 공산이 크겠다.
개미, 꼽아보면 참으로 만만찮은 존재. 한편 개미의 또 다른 특징은 너무나 널리 골고루 분포한다는 것. 과연 개미는 그 어디에서든 단 몇 분 만에 접촉이 가능하다. 북한산 비로봉의 깔딱고개, 신통한 달맞이꽃이 눈에 들어왔다. 힘들게 한고비 올랐다는 대견함을 느끼려는 순간, 개미는 유유히 꽃잎 속의 암술과 수술을 건드린 뒤 줄기를 타고 다음 꽃을 향하고 있었다. 이때 개미는 이 지구를 정기적으로 순수(巡狩)하는 행위!
그제는 합정역에서 개미를 만났다. 개미는 아무리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나하고 같이 숨을 쉬고 같은 물을 먹는다. 개미의 날렵한 행동을 보면 저 압축된 몸에도 번뇌나 생각은 충분한 것. 몇 발짝 앞서가던 개미가 재빨리 자취를 감추었다. 굉음을 울리며 들이닥치는 것을 점검한 뒤 작은 구멍으로 숨었는가.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개미 꽁무니를 좇다가 하마터면 전동차를 놓칠 뻔하였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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