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폭설·폭염에 더 사지로 내몰리는 라이더…‘기후실업급여’ 절실”[기후정의행진 연속 인터뷰]

김기범 기자 2024. 9. 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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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김지수 ‘라이더유니온지부’ 사무국장
김지수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이 지난 1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수입 들쑥날쑥한 불안정 노동에
할증요금 유혹 뿌리치기 힘들어
온열질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
플랫폼 기업들은 보호 조치 외면
지수형 보험 도입 선택권 보장을

“폭우나 폭설이 내리는 날 라이더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사지로 나가게 됩니다. 불안정 노동을 하면서 수입이 들쑥날쑥한 입장에서 ‘기상할증’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죠. 라이더들이 몇 푼 할증요금 대신 안전을 택할 수 있도록 ‘기후실업급여’가 필요합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김지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사무국장은 “불안정·야외 노동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기후정의’가 필요한 이들”이라면서 “현재도 기후위기는 배달 노동자들을 포함한 불안정 야외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후위기가) 더욱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양한 배달 플랫폼에서 일하며 일명 라이더로 불리는 배달 노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 비나 눈이 많이 내리면 길이 미끄럽고, 시야가 좁아져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 또 폭염 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것은 열사병 등 온열질환의 위험을 키운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도로 한복판에서 주변 자동차들이 내뿜는 에어컨 열기와 배기가스까지 더해져 정신이 아찔해진 경험이 있다고 라이더들은 호소한다.

김 국장은 “특히 폭염은 라이더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며 “안전을 위해서는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을 쓰고, 관절마다 보호장비를 차는 것이 맞지만 무더위 때 헬멧을 쓰고 장시간 일하는 것은 그만큼 더 힘들고,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도 높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위를 견디기 힘든 나머지 자전거 헬멧처럼 가벼운 장비를 착용하는 라이더들도 있는데, 그만큼 자신을 위험에 노출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특히 플랫폼업체들의 ‘기상할증’이 배달 노동자들을 기상 악화 시에 더 위험한 노동환경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달 플랫폼들은 악천후 때 라이더들에게 배달료로 500~1000원 정도를 더 지급하는 등의 조건을 내거는데 수입이 일정치 않은 배달 노동자들로서는 이를 거부하기가 어렵다. 플랫폼 기업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사고 위험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어떤 보호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 국장은 “나도 2020년 장마철에 새로 산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다 미끄러지면서 골절 산재를 당한 적이 있다”며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오토바이를 타면 안 된다고 생각해야 하지만, 라이더들은 ‘이런 날 바짝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했다.

김 국장은 “기후정의 측면에서 배달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파라메트릭 보험(지수형 보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배달 노동자에게는 폭염이나 폭우, 폭설 등 날씨 조건에 따라 지급되는 일종의 기후실업급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이 많이 와서 배달이 위험해지면 배달 노동자들에게 자동으로 보험금이 지급되면서 위험한 노동환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한국의 기후가 비가 내리는 시점이나 강우량을 예측하기 어렵게 변해가는 것도 배달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요소다. 옆 동네엔 햇볕이 났는데, 이 동네는 동남아시아의 스콜 같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가 익숙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다른 시민들에게 조금 불편한 정도라면 라이더들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끄러움으로 인해 목숨을 위협당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에서 배달 노동자들이 위험에 내몰리지 않도록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면서 “토요일이라 라이더들에게는 일이 많은 날이지만, 7일 기후정의행진에 다른 라이더들과 동참해 불안정한 야외 노동자들을 위한 기후정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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