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민화의 매력은 남다른 창의성”

하송이 기자 2024. 9. 5. 19: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제아카데미 21기 13주차 강연- 정병모 한국민화학교 교장

- K아트 새로운 보물 책거리 소개
- 정물화, 화가의 삶의 흔적 담아
- ‘책가도’ 서양 구도·형태 틀 탈피

“한국의 정물화인 민화는 세계가 주목하는 K-아트 입니다”

정병모 한국민화학교 교장이 책거리 그림의 매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종근


지난 4일 국제아카데미 21기 13주차 강연이 부산 롯데호텔 3층 펄룸에서 펼쳐졌다. 이날 강사로 나선 정병모 한국민화학교 교장은 ‘민화를 세계로-책거리’를 주제로 책이 주인공인 한국 민화의 가치와 역사 이야기를 풀어냈다. 정 교장은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거쳤으며,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한국의 채색화’ ‘민화는 민화다’ 등 민화와 관련된 저서를 여러 권 펴내면서 민화의 대중화에 힘써왔다. 특히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민화 전시회를 개최하고 미국 하버드대, 일본 도시샤대 등에서 강연하며 한국의 민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가 이번 강연에서 꺼내 든 ‘책거리’는 책(Book)과 물건을 의미하는 거리(Things)를 합해서 탄생한 말이다. 그 중에서 책가도(冊架圖)는 서가(책장)가 있는 정물화를 지칭한다. 정 교장은 반고흐의 그림과 책을 주인공으로 한 조선시대 정물화를 비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정물화는 단순히 물건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을 담은 것”이라며 “반 고흐의 그림 속 양파는 슬픔 마음을 의미하고, 술병은 이를 지워가는 도구다. 즉 삶의 고뇌를 의미한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정물화는 행복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책은 출세를, 수박은 다산을, 천도복숭아는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장은 우리나라 책거리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5세기 유럽 대항해시대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당시 항해기술의 발달로 식민지에서 공수한 희귀한 물건이 유럽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자 유럽에서는 진귀하고 희귀한 물건을 따로 보관하는 방(cabinet)이 등장했다고.

“유럽 왕궁에 가면 어떤 방에는 카펫만 있고 어떤방은 중국 청화백자로만 가득차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물건(Things)이 삶의 중요한 아이템이 된 거에요. 이렇게 식민지에서 가져온 걸로 꾸민 방이 곧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입니다.”

그는 ‘cabinet’이라는 단어에는 ‘장식장’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실제 유럽에서 물건을 모으는 풍습은 17세기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방’의 형태에서 ‘장식장’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는 이 같은 정물화를 다보격(多寶格)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청동기 도자기 옥 등 당시 중국인이 선호하는 물건이 등장합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청동기 도자기가 드디어 책으로 바뀌게 됩니다.”

정 교장은 한국 민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창의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처음 국내에서 제작된 책가도는 서양의 표현 기법과 구도를 그대로 차용한 반면 왕가에서 민가로 넘어오며 변용된 민화는 구도, 형태 등에서 기존 공식을 완전히 뒤엎고 새로움을 창조해냈다.

민화를 보면 책장 가운데 창을 뚫어 숲과 호수의 일부를 그려넣기도 하고, 한 그림에 등장하는 물건마다 각기다른 구도를 차용하는 경우도 있다. 정 교장은 “그림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민화의 구도는 물건과 물건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고 쌓는 형태로 변했다. 가방에 물건을 넣으면 물건이 가방의 형태에 가둬지지만 보따리에 넣으면 물건 모양대로 보따리가 바뀌는데, 이처럼 민화는 틀에 갇힌 구조가 아니라 자유로웠다. 결국 이게 포스트 모던”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 교장은 해외에서 바라보는 민화의 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책거리 특별전이 열리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수 언론이 전면을 할애해 책거리 민화의 창의력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고. 최근에는 현대의 민화 작가들이 옛 민화를 재현한 작품도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 정 교장의 설명이다.

“해외 유수 대학 학생들이 책거리 그림을 보면서 한국학 공부를 하고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책거리 그림을 전파하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프린스턴대 하버드대에서 강연과 함께 민화작가들의 모사도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책거리는 우리의 그림이지만 우리만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보물입니다. 바로 K-아트의 주인공인거죠.”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