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 오류 338건… 어떻게 검정 통과했나”

강지원 2024. 9. 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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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검증
'조선교육령' '이승만 정읍발언' 등 오류투성이
'2022 개정 교육과정 한국사 성취기준' 완화돼
"학교 채택 시 뉴라이트 교과서 진지전 " 우려
최근 초중고 검정교과서 심사를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등이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에 공개돼 있다. 세종=뉴시스

친일·독재 미화 논란이 불거진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300건이 넘는 오류가 있다는 시민단체 분석 결과가 나왔다. 단체는 기본적인 사실관계 오류도 적지 않다며 교육당국의 검정 과정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일제가 ‘조선어 교육’을 강화했다?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조선교육령'.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는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 심사를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를 역사학계 전문가와 현직 역사 교사 등 총 13명에게 검증을 의뢰한 결과 338건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5일 밝혔다. 검증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으니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충족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어떻게 검정을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만큼 수준 이하의 내용이다”고 혹평했다.

유형별로는 △연도나 단체명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 오류 △일관성 없는 용어 사용 △부적절한 사진·도표 자료 인용 △음력과 양력의 표기 오류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의도적인 유도성 질문 △부정확한 서술 등이다. 시대별로는 전근대사 45건(13.3%), 개항기 32건(9.5%), 일제강점기 132건(39%), 현대사 129건(38.2%)의 오류가 발견됐다.

민문연에 따르면 해당 교과서는 1922년 일제가 시행한 ‘2차 조선교육령’ 설명에서 ‘조선어 필수’라고 해 마치 일제가 조선어 교육을 강화한 것처럼 기술했다(2권 12·17쪽). 민문연은 이미 1차 교육령(1911년) 때 일본어와 한국어가 필수였고, 2차로 넘어가면서 조선어와 한문으로 과목을 분리해 한국어 교육을 줄였다고 반박했다.

단체는 식민지근대화론 등 뉴라이트 역사관에 기반한 서술도 있다고 평가했다. 교과서(2권 94쪽)에서 ‘주제 탐구’로 다룬 ‘이승만의 정읍 발언’ 관련 지문에는 2008년 출간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서술한 부분이 그대로 인용됐다. 교과서포럼은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다수 포진한 단체다. 민문연은 “스탈린 지시로 북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운 점을 강조하며 이승만의 정읍 발언은 이미 공산화된 북한에 대한 대응을 위한 용단이었다는 평가를 유도한다”며 “이승만에 대한 단독정부 수립 책임론을 벗기기 위한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이 관철됐다”고 지적했다. 교과서(2권 25쪽)에 실린 ‘대륙 침략과 병참 기지화 정책’ 부분에 대해서도 “한반도 공업화가 광복 이후 한국 경제의 바탕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뉴라이트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3·1운동을 설명하며 ‘이승훈과 한용운 등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고 한 부분(2권 34쪽)도 종교적 인물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교과서들이 손병희를 첫 번째 인물로 꼽는 것과 대조적이다. 여순 사건 관련 ‘자기 주도 역사 탐구’(2권 88쪽)에서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라는 인물을 거론하며 “여순 사건으로 자신의 두 아들이 좌익 계열 학생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묘사했다. 민문연은 손양원 목사가 2013년 검정 통과로 우편향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여순사건 희생자로 처음 언급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순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본질임에도 좌익세력에 의해 희생당한 것처럼 썼다”고 비판했다.


어떻게 정부 검정 통과했나

최근 초중고교 검정교과서 심사를 통과한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읍 발언'을 탐구 문제로 비중 있게 싣고 있다. 세종=뉴시스

민문연은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이 부실한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게 하는 단초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검증에 참여한 조왕호 전 대일고 교사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 당시 전근대사 비중이 갑자기 2개 단원으로 늘어나는 등 맥락적 이해를 도모해야 할 역사 교과서가 사실 나열로 채워지는 총체적 부실화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특히 2022년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을 보면 ‘일제의 식민 통치가 초래한 경제 구조의 변화와 그것이 경제 생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고 돼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표현한 ‘경제수탈’은 삭제됐다.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과 물적수탈을 강행했고,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하였음을 서술한다’(2009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는 기준도 ‘식민지 경제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그 변화가 사람들의 생활에 미친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로 완화됐다. 민문연은 ‘수탈’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가치중립적인 ‘변화’라는 용어를 대체해 일제강점기를 식민지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서술했다고 평가했다.

독립국가 건설 관련 성취기준도 달라졌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에는 ‘신국가 건설 구상을 살펴봄으로써 민족운동과 광복을 연속적인 관점에서 제시한다’고 했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에는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추구하였음을 국내외 자료를 통해 분석한다’고 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는 전반적으로 형식적 요건만 갖춘 맹탕 뉴라이트 교과서로 보이지만, 일선 학교에서 채택되기만 하면 뉴라이트 교과서 진지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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