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으로 공격하고 ‘이재명’으로 수비…여야 원내사령탑 ‘연설 대전’ 손익은?
여야는 모두 아전인수 해석…전문가들 “양측 치킨게임으로 ‘민생’ 여전히 뒷전”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치 퇴행'의 궁극 배경에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여야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개원 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각종 현안 키워드를 열거하며 맞붙었다. 첫 타자인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대통령' 단어만 약 50차례에 언급하며 정부 저격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튿날 연설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입법 독주'를 소환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정치권에선 정국 주도권을 노리는 양측의 연설 손익 계산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모양새다.
박찬대 "尹, 불행한 전철 밟을 것" vs 추경호 "이재명 방탄 수렁서 나와야"
박찬대 원내대표는 4일 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등판해 '윤석열 정부'를 타깃으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연설 전문을 분석한 결과, 통상적 단어인 '국민'(70번)에 이어 '대통령'(48번)과 '정부'(29번) 키워드가 가장 많이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헌법 22번 ▲위기 21번 ▲국회 16번 ▲거부 11번 ▲일본 10번 ▲민주주의 9번 ▲민생 9번 ▲검찰 8번 ▲특검 7번씩 거론됐다. 대부분 정부 비판과 관련된 키워드가 상위권에 포진된 셈이다.
박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5대 위기'(국민안전, 민생경제, 민주주의, 한반도 평화, 헌정질서)의 근본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분열적 사고, 표리부동, 무책임, 독선과 불통"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어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은 물론, 의정 갈등으로 초래된 '의료 위기' 상황도 지적하며 "진짜 독재는 윤 대통령이 하고 있다", "민심을 거역하면 결국 불행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박 원내대표는 국회의 과제로 '개헌 추진'과 '의료대란 해결' 등을 꼽았다. 그는 "개헌도 속도를 내야 한다"며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도입은 합의 가능한 만큼 22대 국회에서 이것부터 개정하자"고 했다. 또 "의료대란 해결을 위해 '여‧야‧의‧정 비상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자"고 제안했다. 이외에도 기후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특위도 설치하자는 제언이다.
이에 추경호 원내대표도 이튿날인 5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민주당 입법 독주'를 소환하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개혁 기조에도 발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연설 전문을 보면 '국민(50번)'에 이어 '정부'(40번), '개혁'(33번), '민주당'(32번)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어 ▲민생 25번 ▲재정 20번 ▲의료 19번 ▲탄핵 18번 ▲정쟁 12번 ▲연금 12번 ▲청년 11번 ▲반도체 9번 ▲노동 7번 ▲윤석열 7번 ▲이재명 6번씩 언급됐다.
추 원내대표는 '정치 퇴행'의 원인은 '이재명 일극체제'의 민주당에 있다고 재차 쏘아붙였다. 그는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한 사람을 위해 포획된 방탄 정당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며 "이 대표도 수사와 재판을 개인 차원에서 당당하게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최근 탄핵‧특검법안 등을 남발하고 청문회도 필요 이상으로 열었다며 "탄핵소추권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아 마구잡이로 내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 과제로 '민생'과 '개혁'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멈추지 않으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도 놓았다. 그는 "진실로 답답하고 두려운 것은 민주당 '입법 폭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몸이 똑바른데 그림자가 굽을 리 있겠나. 민주당이 일방적인 입법 폭주를 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왜 거부권을 행사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여야, 서로 '허점' 공략했다고 자신…전문가들은 '민생 뒷전' 우려
이처럼 '대통령 실정'과 '야당 대표 사법 리스크' 공방전으로 이어진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두고 정치권의 여야 손익 계산 분석도 분분한 모습이다. 일단 양당에선 정기국회 정국 주도권을 잡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에선 '대통령 실정'과 '민생 정책' 전략으로 총선부터 정기국회까지 연타석 '주도권' 홈런의 포석을 놨다고 보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박 원내대표가 조리 있게 잘 짚는 동시에, 여야 당대표 회담의 연장선으로 각종 민생‧미래 어젠다들을 제시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가져왔다. 추 원내대표는 우리가 꺼낸 민생회복지원금 등 정책마다 반박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했고 저출생 대책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선 '이재명 리스크' 덕분에 타격이 없었다고 자신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이 대표 등이 꺼낸 '계엄' 논란들에 민주당 내부도 비판적 기류가 감지되는 만큼, 추 원내대표가 허점을 잘 공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추 원내대표가 연설 중간 민주당을 '독주 정당'으로 지적할 때마다 민주당에서 단일대오로 '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매우 괴리감이 들었다"며 "이러한 모습에 대해 국민들도 올바른 판단을 하실 것"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결국 국회의 비전과 협치 메시지를 전해야 할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마저 '윤석열-이재명' 리스크 공방으로 물들면서 '민생' 키워드는 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결국 대통령과 야권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여당도 스탠스를 잡지 못하고 대통령, 친윤(親윤석열), 야당, 국민, 당원들 눈치를 모두 보면서 좌고우면하다, 이재명 대표에게 공세를 집중시키며 그나마 탈출구를 찾고 있다"며 "결국 양측이 어느 한 쪽은 죽어야 끝나는 치킨 게임만 하는 상황에서 민생은 연설문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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