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사니즘’과 ‘텍스트힙’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일성이다. ‘먹사니즘’은 ‘먹고사는’과 ‘이즘’의 합성어로, 민생과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나온 단어다. 원본이라 할 ‘먹고사니즘’이 회자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본래 이 말은 먹고살기 급급해 이치나 도리를 따지지 못하는 상황을 변명하는 부정적 뉘앙스였다. ‘먹사니즘’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보다 아연해진 이유다.
그 무렵 ‘텍스트힙’이란 말도 알게 됐다. ‘텍스트힙’은 ‘텍스트’와 ‘힙하다’(감각적이고 신선하다)의 합성어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이른바 ‘제트(Z)세대’가 독서와 기록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실제 젊은 세대 독서율이나 도서 구매가 크게 증가했단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에 책 사진 올리는 사람이 많아졌을 뿐”이라는 조소도 나오지만, 출판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과시용이라도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어쨌든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인문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우치다 다쓰루 또한 “출판은 허(虛)의 수요 위에 존립한다”면서, 책이란 원래 과시욕과 이상적 자아상을 떠받치는 물건임을 강조한 바 있다.
‘먹사니즘’과 ‘텍스트힙’은 비슷한 시기 우연히 마주친 단어들이지만, 내게는 어쩐지 ‘빵과 장미’처럼 들렸다.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은 “우리는 빵을 얻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우리는 장미를 얻기 위해서도 싸운다”고 썼다. ‘빵과 장미 파업’이라 불리는 1912년 로런스 파업의 여성 노동자들은 피켓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도!” ‘빵’은 생존의 최소 요건이다. 그러나 ‘장미’, 즉 풍요로운 문화가 없다면 그것은 먹고 싸는 행위의 반복에 불과하다. ‘빵’이 육체를 유지하게 한다면 ‘장미’는 삶의 의미를 생산한다. 우리는 ‘빵’만으로도, ‘장미’만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빵이 더 중요한 게 아니냐고. ‘장미’ 없이는 생존할 수 있지만 ‘빵’ 없이는 당장 죽는다고. 그렇게 볼 수 있겠다. 흥미로운 건 굳이 ‘빵’만 강조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서 ‘장미’를 쓸모없고 사치스러운 장식품으로 여기는 자들 중에 하필이면 독재자가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정희가 썼다는 유명한 ‘시’ 한 구절을 읽어보자. “2등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더라.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가 없다.”(‘국가와 혁명과 나’, 1963)
한국의 많은 극우파들은 저 시에 “특권층을 향한 분노”가 담겼다고 칭송한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특권층”이 어디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2등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일까? 우선 특권층인데 왜 1등 객차가 아니라 2등 객차인지부터 의문이다. “불란서 시집”을 읽는다면 문학소녀면 몰라도 특권층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일반적으로 특권층이라 하면, 비밀 요정에 최고 인기 여자 연예인을 불러 양주 파티를 일삼는 자를 떠올리는 게 자연스럽다.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라는 구절에 명백히 드러난 건 특권층에 대한 분노 같은 게 아니다. 그저 ‘배운 여성’에 대한 지독한 혐오, 곧 여성혐오와 반지성주의다.
대개 우파·극우파들은 ‘장미’를, 특히 책을 혐오했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가 2011년 오사카 시장이 되자마자 한 일이 도서관 탄압이었다. 대구시장 홍준표는 249개에 이르는 ‘작은 도서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마포구청장 박강수는 구내 도서관을 독서실로 바꾸고 문제를 제기한 도서관장을 파면했다. 윤석열 정권 들어 독서 관련 예산은 10분의 1 토막이 났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빵’보다 훨씬 무서운 게 ‘장미’라는 것을, 그것이 ‘권력의 가스라이팅’에 대항하는 해독제임을 우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먹고사는 일의 엄중함을 헤아리는 사려와, “먹고사는 외에 전부 부질없으며 어차피 세상은 날것의 욕망으로 굴러간다”는 사고방식은 전혀 다른 것이다. 후자는 오로지 먹고사는 일만 중요하다는 환원론이며 그렇기에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폄하하고 부정한다. ‘빵’만 강조하거나 ‘장미’를 억압하는 것은 정치가 비루해졌다는 결정적 증거다. 시민은 결연히 맞서야 한다. ‘빵’도 ‘장미’도 모두 우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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