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제 안식을 찾게나'…생의 마지막 길을 떠난 겨울 나그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클래식 노래는 크게 오페라 아리아와 예술가곡으로 나뉜다.
독일의 리트(Lied)가 예술가곡의 으뜸 자리다.
세 편의 연가곡집이 ①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②겨울 나그네 ③백조의 노래다.
사실 독일어 '디 라이제(Die Reise)'는 '나그네'가 아니라 '여행'인데 일본인들이 멋들어지게 의역한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연가곡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진 청년이
눈보라 치는 겨울 방황하는 모습
사랑과 고독, 생의 의미와 죽음…
삶의 마지막에서 느낀 사색 표현
클래식 노래는 크게 오페라 아리아와 예술가곡으로 나뉜다. 독일의 리트(Lied)가 예술가곡의 으뜸 자리다. 리트는 반드시 예술성 높은 시(詩)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보통 노래 게장(Gesang)과 구별된다. 아리아가 구조적으로 외적인 감정 표출이라면 리트는 감정의 내밀한 고백에 가깝다.
슈베르트는 독일 가곡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모차르트보다 더 짧은 31세 인생에서 무려 603곡의 리트를 남겼다. ‘가곡왕’이 그의 별칭일 정도이니. 세 편의 연가곡집이 ①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②겨울 나그네 ③백조의 노래다. 이 중에서 죽기 1년 전인 1827년 30세 때 작품 ‘겨울 나그네(Winterreise)’가 가장 유명하다. 사실 독일어 ‘디 라이제(Die Reise)’는 ‘나그네’가 아니라 ‘여행’인데 일본인들이 멋들어지게 의역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행’도 아니고 ‘정처 없는 방랑길·유랑길’에 가깝다. 24곡으로 이뤄진 이 노래책에서 대중에게 제일 많이 알려진 건 당연히 제5곡 ‘보리수(Der Lindenbaum)’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서 단꿈을 꾸었네/ 수많은 사랑의 말들을 가지에 새기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곳을 찾았었지/ 오늘도 밤이 깊도록 헤매고 다녔다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지/ 그러자 가지가 바스락거렸네, 마치 나를 부르듯이/ 내게로 오게나, 친구여/ 여기서 이제 안식을 찾게나/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내 뺨을 때리고 있네.”
안식을 찾으라는 의미는 동사(凍死), 곧 죽음이다. 밖은 춥고 얼얼한 겨울바람이 분다. 정해진 거처가 없는 이 노정은 이대로라면 생의 마지막이다. 길을 나선 이 청년은 누구며 왜 이 고행길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 가사 중 ‘내게로 오게나, 친구여(Komm her zu mir, Geselle)’ 대목. ‘친구’로 번역된 ‘게젤레(Geselle)’에서 답을 짐작할 수 있다. 독어로 친구는 프로인트(Freund)인데 여기선 왜 게젤레일까.
독일은 예나 지금이나 장인, 마이스터의 나라다. 쇠, 나무, 돌, 유리 등을 기막히게 다루는 고수가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한 청년이 기술을 배우러 고향을 등지고 떠난다. 마이스터 밑에서 처음엔 도제가 돼 열심히 배우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직인(職人)의 위치에 오르는데 이게 게젤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발전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연정을 품은 스승의 딸, 혹은 이웃집 처녀를 뒤로하고 말이다. 보리수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애틋한 스토리의 당사자인 것이다. 무능을 심판받고 실연까지 당한 존재들. 그러니 우울한 정조를 띨 수밖에 없다.
왜 하필 보리수일까. 보리수는 독일인에게 우리의 소나무 격이다. 신전의 제사는 보리수 아래에서 이뤄졌다. 옛 독일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 큰 린덴바움, 즉 보리수에서 만나 대소사를 결정했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1925~2012)의 1972년 녹음은 최고일 것이다. 시인이나 철학자가 노래를 기막히게 잘한다면 피셔디스카우 같을 터. ‘가장 지적이고 분석적인 가수’ ‘독일 가곡에 숙명적인 존재’ ‘위대한 권위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바리톤’. 그를 향한 수식어의 찬사는 당최 끝이 없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식 다 팔아치우겠다" 강남 부자들 대혼란…무슨 일이
- 백종원, 30년 공들이더니…2460억원 '돈방석' 잭팟
- 30대 직장인, 반려견과 여름휴가 떠났다가…'충격' 받은 이유
- 해외선 벌써 갈아탔는데…위스키 찾던 2030 돌변한 이유
- "없어서 못 팔아요"…외국인들 쓸어담자 품절된 다이소 제품 [현장+]
- "요즘 나이키 누가 신어요"…러닝족 홀린 신발의 정체
- 14년 일한 공무원이 中 간첩이라니…'발칵' 뒤집어졌다
- "큰아버지가 사실 아버지"…'굿파트너' 작가가 전한 불륜 사례
- "옆집 엄마도 쓰더라"…70만원 고가에도 '필수품' 됐다 [이미경의 인사이트]
- 성심당 케이크 망가질까 걱정했는데…'대단한 아이디어' 엄지척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