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응급실은 저리 숨 넘어가는데, 국민 속 뒤집는 당국자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응급실 파행 운영이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보건복지부 고위 당국자들이 불안해하는 국민 속을 뒤집어놓고 있다. 조규홍 장관은 지난 4일 “의료개혁 반대 세력 때문에 응급의료가 위기”라고 했다. 박민수 2차관은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나는 것은 경증”이라며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국민들의 우려와 고통을 헤아리기는커녕, 분노를 키우는 이들이 의료정책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복지부는 지난 4일 의사 부족으로 응급실 운영을 부분 중단하거나 중단 예정인 병원이 5곳이고, 25개 주요 병원 응급실은 당직의사 혼자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은 다르다. 현장에선 의사 부족으로 의료진 피로가 쌓여가고 있다. 환자들은 ‘응급실 뺑뺑이’로 병원에 가는 것조차 불투명한 실정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 대란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규홍 장관은 “의대 증원했다고 현장을 떠난 의사, 전 세계 유례없다”고 했다. 지난 반년간 의료계에 합리적 증원 방안을 가져오라며 뒷짐 지고 있다가 응급실 위기가 본격화하자 의료진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박민수 차관은 한술 더 떠 “중증은 의식 불명이거나 본인이 스스로 뭘 할 수 없는 마비 상태로,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프거나,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난다는 것은 경증에 해당한다”고 했다. 고열·복통·출혈 환자는 응급실에 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경증인 줄 알고 응급실을 갔다가 중증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많아 경·중증 여부는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의료정책 책임자들이 환자와 그 가족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는 못할망정 이런 궤변을 서슴지 않다니 말문이 막힐 정도다. 응급 치료로 살 수 있는 환자가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음에 이른다면 누가 책임질 건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브리핑에서 “비상의료체계가 원활하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였다. 복지부 고위 당국자들이 의료현장의 실상을 대통령실에 제대로 전달했다면 저런 발언이 나왔을까. 대통령이 현장 상황이 어떻게 되건 말건 의대 정원 증원을 고집하고 있다면, 직을 걸고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게 국민 건강을 책임진 공직자의 자세 아닌가.
지금 복지부 장차관은 당면한 응급실 위기는 물론 의·정 갈등을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의료단체들도 이들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여당에서도 사퇴 요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의·정 갈등을 풀 의지가 있다면 이들을 경질하고 사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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