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사 늑장에 예산 삭감, 권력 수사하는 공수처 압박 아닌가
윤석열 정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내년 수사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수사를 진행 중인 공수처에 대한 정권의 압박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2025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공수처의 수사지원 및 수사일반 예산은 14억3000만원으로, 올해보다 2억8950만원(16.8%) 줄었다. 항목별로는 수사와 관련된 여비와 경비가 주로 깎였다. 내년 국내 여비는 올해의 절반으로 줄었고, 국외 여비는 전액 삭감됐다. 특수업무경비도 올해 대비 5.2%(2300만원) 줄었고, 포상금은 22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5분의 1 토막이 났다. 반면 검찰의 수사 예산은 늘렸다. 수사권 조정으로 기능과 역할이 축소됐지만 1223억원으로 올해보다 44억원(3.6%) 증액됐다.
기획재정부는 공수처의 예산 불용률이 높아 집행 실적에 맞춰 예산을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배정한 예산도 못 쓰고 있으니 삭감해야 한다는 논리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일 수 있다. 국민 세금은 아껴 써야 한다. 공수처가 제 역할을 못해 예산 집행이 부진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껏 내세울 만한 수사 실적도 없다.
그러나 이는 공수처 책임만이 아니다. 공수처는 올해 4개월 넘게 지도부 공백 사태를 겪었다. 지난 1월20일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퇴임했지만, 후임 오동운 처장은 5월21일에야 취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규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공수처장에 앉히기 위해 지명 절차를 뭉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사이 공수처는 처장 대행인 여운국 차장도 임기 만료로 떠나고, ‘대행의 대행’을 이어받은 김선규 수사1부장마저 사직하면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진 지 1년이 지났지만 공수처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 세관마약수사 무마 의혹 등 본류에서 파생된 사건도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수처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고삐 풀린 검찰을 제어할 곳도 공수처다. 공수처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오랜 논의를 거쳐 설립된 권력형 비리 수사 전담 기구다. 수사 예산을 줄일 것이 아니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인적·물적 지원을 충분히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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