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펀드 줄줄이 상폐···운용업계 "밸류업 ETF도 불안"
KB운용 이어 NH-아문디운용도 관련 ETF 상폐
통일·뉴딜 등 관제펀드, 반짝 인기 후 찬밥신세
KRX코리아밸류업지수 9월 공개···11월 ETF 출시예정
운용업계는 ‘심드렁’···"같은 지수로 상품차별화 어려워"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KRX 코리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지수’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전 정권 주도로 개발된 기존 ETF들은 줄줄이 상장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밸류업 ETF 역시 정부 주도로 조성된 다른 ‘관제 펀드’의 뒷길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확산하고 있다.
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거래소가 개발한 ‘KRX기후변화솔루션지수’를 추종하는 NH아문디자산운용의 ‘KRX기후변화솔루션 ETF’는 이달 11일 상장폐지된다. 이 상품의 순자산 총액은 이날 기준 21억 원에 불과해 상폐 기준액인 50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태다. NH아문디운용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지면서 잔액이 소규모로 쪼그라들었고 동일한 성격의 대형 운용사 상품들이 있어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상폐 이유를 설명했다.
KRX기후변화솔루션지수를 추종하는 ETF 가운데 주식시장에서 사라질 운명을 맞이한 상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KB자산운용의 ‘KBSTAR KRX기후변화솔루션’은 이미 올 6월 같은 이유로 상장폐지됐다. 삼성·미래에셋자산운용의 ‘KODEX 기후변화솔루션’ ‘TIGER KRX기후변화솔루션’도 순자산 총액이 100억 원대에 불과해 불안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 ETF는 자산만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 수익률 부문에서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KRX기후변화솔루션지수를 추종하는 ETF들은 올 들어 5일까지 15% 안팎으로 일제히 하락했다. 올 들어 4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의 평균 하락률이 1.17%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훨씬 더 저조한 성적표다.
해당 ETF들은 2021년 거래소가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정책’에 발맞춰 관련 지수를 내놓으면서 함께 출시된 상품이다. KRX기후변화솔루션지수는 탄소 배출량, 탄소 관련 특허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40개 종목을 편입했고 6개 운용사는 관련 ETF를 출시하며 이에 호응했다. 당시 거래소는 “KRX기후변화솔루션지수는 성장 대형주 비중이 커 코스피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며 “자본시장을 통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후변화에 투자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뉴딜’ ‘신재생’ 등 문재인 정부가 강조했던 주요 정책이 힘을 잃자 기후변화솔루션 ETF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정권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은 관제 펀드는 이전에도 꾸준히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펀드’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뉴딜 관련 공모펀드 설정액은 2021년 9월 말 2142억 원에서 이달 3일 1278억 원으로 3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이달 거래소에서 발표하기로 한 KRX코리아밸류업지수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곳곳에서 내고 있다. 아직까지 밸류업 계획을 밝힌 상장사는 전체의 1.1%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해당 상장사에서 금융지주·증권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 밸류업 ETF가 고배당 우량주를 담은 기존 상품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같은 지수를 추종하더라도 중소형 운용사들의 ETF 경쟁력이 대형사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업계의 고민거리다. 실제 상당수 중소형사들은 밸류업 ETF를 출시하지 않기로 일찌감치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밸류업 관련 ETF는 올 11월 업계에서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책의 일관성이 길게 이어져야 관제 펀드 조성 효과가 지속되는데 이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며 “자사주 소각 단계적 의무화나 배당 세제 혜택 등 수익률 제고를 위한 방안을 성의 있게 들고 나와야 장기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이라 기자 elalal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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