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과 스승 차강의 난 보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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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0주기를 맞은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은 생전에 책 하나 문건 하나도 펴내지 않았다.
'묵객-차강 박기정의 스승과 제자전/삼강의 난향:차강 박기정·청강 장일순·화강 박영기'(평창군 주최, 차강 선생 선양회 주관)로 명명된 이 전시에는 무위당의 서화 스승인 차강 박기정(1874~1949)과 그의 손자 화강 박영기 그리고 청강 장일순의 난초 작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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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강 박기정의 스승과 제자전’
장일순 네살 때부터 차강 사사
스승, 의병 참여한 은둔의 묵객
30주기 장일순 2천여점 서화 남겨
올해 30주기를 맞은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은 생전에 책 하나 문건 하나도 펴내지 않았다. 대신 2천여점의 서화 작품을 남겼다. 사회운동가이자 생명사상가 무위당을 기리는 단체인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사장 곽병은)이 고인의 글씨와 그림을 찾아 사진으로 묶은 작품만 700점이다.
무위당 서화 중에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난초’인 ‘의인난’이 특히 유명하다. 이 난초들은 한결같이 낮은 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 ‘풀뿌리난’으로도 불린다. 민초를 떠올려서다. 시인 김지하는 모심과 살림의 사상 등 무위당의 모든 게 ‘난초’ 안에 들어있다고도 했다.
장일순의 ‘의인난’ 10여점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오는 10일부터 내달 11일까지 강원 평창군 봉평면 봉평콧등작은미술관에서 열린다. ‘묵객-차강 박기정의 스승과 제자전/삼강의 난향:차강 박기정·청강 장일순·화강 박영기’(평창군 주최, 차강 선생 선양회 주관)로 명명된 이 전시에는 무위당의 서화 스승인 차강 박기정(1874~1949)과 그의 손자 화강 박영기 그리고 청강 장일순의 난초 작품이 나온다. 청강은 장일순이 1970년대까지 주로 써온 호이다.
경북 성주 출신인 차강은 근세 서화의 대가인 해강 김규진으로부터 ‘죽(竹)은 내가 낫고 난(蘭)은 자네가 낫네' 소리를 들을 만큼 뛰어난 묵객이었지만 을사늑약 이후엔 출사하지 않고 봉평 덕거리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서화 제자도 손자와 절친(장경호)의 손자 장일순 둘 뿐이었다. 1893년 전국 한시백일장 휘호 경시에서 장원까지 한 차강은 1895년 을미의병 때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일제 강점기에는 서화 작품을 내놓아 독립자금을 대었다고 한다.
“원주의 거상이었던 장경호 선생님이 차강 작품을 높이 평가하셨어요. 그런 연유로 차강이 장 선생님 집을 자주 들러 손자 장일순이 네살 때부터 글씨를 가르쳤다고 해요. 청강 호도 차강이 직접 지어주셨고요. 장일순은 생전에 내 정신의 모든 게 봉평의 그 노인네(차강)에게서 나왔다는 말도 했답니다. 차강의 정신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맑은 가을 물인 ‘추수’입니다.” 지난달 말 전화로 만난 이번 전시기획자 유창림씨의 설명이다.
장일순의 조카사위인 황도근 무위당학교 교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무위당 선생 말년에 거처에 들르면 선생의 방석 옆에 늘 조부와 해월 최시형(동학 2대 교주) 사진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어요. 무위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조부입니다.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번 조부는 초등학교와 병원 터를 원주 지역에 무상으로 내놓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음식을 대접하셨어요. 원주의 좋은 분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셨는데요. 독립운동을 한 지식인이자 서화가인 차강도 원주에 오면 조부 사랑에 머물다 가곤 하셨죠.”
유창림씨는 이번 전시는 추사 김정희가 창시한 난화의 최고 경지인 삼전지묘(난 잎을 세 차례 꺾는 화법)를 비교 감상할 기회도 될 것이라고 전했다. “삼전지묘는 추사에서 대원군을 거쳐 이 화법을 독학한 차강과 그 손자에게 이어집니다. 이번 전시에 대원군과 그의 제자 김응원의 삼전지묘 난 화도 특별 출품됩니다.”
황 교장은 의인난 작가 무위당의 감성적인 풍모를 보여주는 일화도 들려줬다. “무위당은 민주화운동 하다 구속되고 먹고 살기 힘든 제자들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면 자주 우셨다고 해요. 마음이 아파서요. 굉장히 감성적인 분이었죠.”
최근 들어 무위당 사상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는 황 교장은 무위당 정신의 가장 위대한 덕목으로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파한 점을 들었다. “말년에 최시형에게 경도된 무위당은 땅은 어머니의 얼굴이니 땅에 침 뱉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농업 생산자를 을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요. 무위당이 만든 한살림이 생산자 단체를 앞세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사진 차강 선생 선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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