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 비행기 안에서 울리는 휴대 전화, 보편화 된다면?
고위공무원 A 씨는 해외 출장으로 아랍에미리트에서 브라질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 있던 중,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위성전화기도 아니었고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를 이용하지도 않았습니다. A씨는 비행기모드 설정을 안 해 놨던 것 뿐인데 휴대전화가 걸려와 놀라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나름대로 급한 용무의 전화였고 비행 중 통화가 가능했던 덕분에 신속히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비행 중인 비행기에서 전화통화, 가능한 일일까
사실 비행 중인 기내에서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오래 전에 개발됐습니다. 이 기술을 상용화해 서비스하는 곳은 영국에 소재한 ' 에어로모바일'이라는 회사입니다.
'피코셀'이라고 불리는 소형 기지국 장치를 비행기에 장착해 지상 기지국의 통신망을 위성을 통해 연결받아 기내 휴대전화기로까지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이 때문에 기내 승객은 비행모드를 풀기만 해도 자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 받는 게 가능해집니다.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별도의 비용을 낼 것도 없습니다. 통신사가 정한 국제 로밍 비용이 전화요금을 낼 때 청구될 뿐이라고 합니다. 너무 많이 쓰면 로밍요금 폭탄을 맞을 수는 있겠지만요.
'에어로모바일'의 서비스는 2008년 상용화됐습니다. 에미레이트항공이 가장 먼저 도입했고, 또 가장 많은 항공편에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지난 2018년 이 서비스 도입 10주년을 맞아 10년 동안 280만 건이 넘는 전화통화가 기내에서 이뤄졌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앞에 설명한 A씨의 사례도 에어로모바일의 서비스를 이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이용한 비행기가 에미에리트 항공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에어로모바일은 에미레이트항공을 포함해 현재 19개 항공사가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적 항공사로는 아시아나 항공이 유일하게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포함된 항공사라고 해서 모든 비행기에서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명했듯 특수 장비가 설치된 비행기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기종에 제한이 있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에도 A350기종에서만 가능합니다. 기내에서 통화를 할 목적으로 해당 기종을 일부러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보편적인 서비스라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왜 사용할 수 없나?
19개 항공사에는 미국 국적항공사가 한 곳도 없습니다. 홍콩 국적사인 캐세이퍼시픽 홈페이지에는 이런 안내도 있습니다.
"SMS 및 데이터로밍은 미국에서는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항공기 내에서 셀룰러 통신 접속을 포함해 휴대전화 사용을 아예 금지하고 있습니다. ‘ 47 CFR § 22.925’ 조항에 따르면 “셀룰러 전화기는 항공기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사용할 수 없다”고 고지하고 있습니다.
승객이 셀룰러 통신망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무선 신호가 고도계와 같이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무선 장비를 사용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FCC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항법 장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승객의 전화통화를 허용할지 여부를 오랜 시간 검토했지만, 2020년에 최종적으로 혀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과 다른 유럽, 왜 기내 5G 연결 허용했나?
보수적인 미국의 정책과 달리 유럽연합은 기내 셀룰러 통신 사용에 대해 매우 전향적입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22년 여객기 승객이 지상에서와 같은 수준의 5G 통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EU가 기내 5G 사용을 적극적으로 허용한 것은 그저 승객의 편의를 높이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디지털 전환 컨설팅 회사인 트랜스포마 인사이트는 자체 보고서를 통해 비행기에서 5G통신을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물인터넷(IoT)를 활용한 항공기 모니터링과 추적이 가능해지는 등 항공 운항에서 안전성도 높이고 새로운 기회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유럽연합이 미국보다 기내 통신 사용에 대해 전향적일 수 있는 배경에는 미국과는 사용하는 5G 주파수가 다르다는 점도 있습니다. 유럽은 5G 연결에 사용하는 주파수가 3.8GHz 미만인 데 반해 미국은 3.7~4.2GHz의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의 주파수는 항공기에서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통신 신호를 방해하지 않는 반면, 미국의 주파수 대역은 항공기의 고도계 신호를 방해하고 부정확한 데이터 값을 제공할 수 있는 소지를 갖고 있어 미국은 셀룰러 통신 허용에 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유사한 조건입니다.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주요 5G 주파수 대역 중 3.5GHz는 항공기 고도계에 사용되는 4.2~4.4GHz와 차이가 있어서 직접적으로 간섭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최소한 비행기 내 5G 통신을 사용하는 데 있어 주파수에 의한 기술적 장벽은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전화 통화가 꼭 필요한가?
A씨의 경우처럼 급한 용무의 전화를 받아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기내 전화통화의 긍정적 요인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럴까요?
기내 전화통화를 기술이나 비용, 편의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미국의 FCC가 장고 끝에 기내 휴대전화 사용 허용을 포기한 것은 기술적 문제보다는 승무원이나 조종사 노조 등의 반대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승무원 등은 기내에서 휴대전화가 무분별하게 사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우려했습니다. 조용했던 기내가 전화통화하는 음성으로 소란스러워질 경우 주변 승객들의 불편과 불만, 갈등 증폭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승무원들이 이를 통제하고 제어하기 곤란해지면 궁극적으로 기내 안전에도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을 테니까요.
테러리스트가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폭발 장치를 터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 역시, 휴대전화의 기내 사용을 반대한 논리 중 하나였습니다. 대형 비행기 테러를 겪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항공기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허용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의 휴대전화 연결이 보편화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장시간 비행이 덜 지루해질까요?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한 가족과 통화를 할 수도 있을테고, 시급한 용무를 처리하거나 출장 중이라면 비행기 안에서도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행기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상의 누군가와 휴대전화 연결이 된다면 좀 더 신속히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 지금처럼 고요한 비행 분위기는 잃게 되겠죠. 취침이나 휴식을 취할 때에도 기내 어디선가 누군가의 통화 내용을 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더러는 일상과의 단절을 기대하며 비행기에 올랐는데 회사 상사가 걸어오는 전화벨에 기분을 망칠 수도 있겠네요.
우려되는 점들은 휴대전화기가 지상에서 처음 사용될 때처럼 생소하다가도 비행 문화가 바뀌면서 또 그것대로 ‘뉴노멀’로 자리를 잡게 될 겁니다. 기내에 통화부스가 마련된다거나, 셀룰러 통신은 허용하되 통화는 끊도록 휴대전화기의 비행모드가 개선될 수도 있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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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열 기자 (the12t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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