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트럼프와 첫 토론전서 '핫마이크' 무산…사라진 역공 기회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토론을 주최하는 ABC 방송이 발언권 없는 후보 앞 마이크는 음소거로 해두기로 결정했다. 양측은 발언권과 상관없이 토론 내내 마이크를 켜놓자는 '핫마이크' 규칙을 부활시킬 것인지를 두고 2주 넘게 대립했다. 상대의 끼어들기를 역으로 이용하는 토론 전략을 구사했던 해리스 부통령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ABC방송은 오는 10일 열리는 대선 후보 토론 규칙을 공개했다. 지난 6월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대 트럼프 전 대통령 CNN 토론 때와 대체로 같다. 양 후보는 펜과 빈 메모지, 물 한 병 외에 토론장에 아무것도 지참할 수 없다. 토론시간은 90분. 중간광고를 위해 두 번 휴식이 주어지지만 참모진과 접촉할 수 없다.
최대 쟁점이었던 핫마이크 규칙은 부활시키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발언권이 없는 후보 앞 마이크는 잠시 음소거된다.
원래 정치인 간 공개토론은 발언권과 상관없이 마이크를 켜놓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2020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 제안으로 마이크 음소거 규칙이 도입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발언 때마다 끼어들어 토론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
마이크 음소거 규칙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조치였으나, BBC에 따르면 이 조치로 이익을 얻은 쪽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정치평론가들은 지난 6월 CNN 토론 때 마이크 음소거 덕분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평소 토론 때보다 정제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캠프는 이 규칙이 유리하다고 판단, ABC뉴스 토론에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리스 부통령이 이번 토론을 무산시키려고 핫마이크 규칙을 고집하는 것이라며, 토론 실력으로 승부하라고 도발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모든 것을 유권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핫마이크 규칙 부활을 주장했다. 브라이언 팰런 해리스 캠프 수석 고문은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트럼프 캠프가 마이크 음소거를 바라는 것은 자기들 후보가 (토론) 90분 내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론에서 냉정을 잃고 해리스 부통령을 향해 욕설하는 장면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핫마이크 규칙이 부활했다면 해리스 부통령에게 상당한 이득이 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해리스 캠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중 거짓과 음모론을 따지는 전략을 준비 중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거짓을 짚는 장면을 짧게 편집해 틱톡, 유튜브 쇼츠 등 SNS에 배포하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검사 출신인 해리스 부통령은 토론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다. 핫마이크 규칙이 있다면 해리스 부통령이 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해리스 부통령의 평소 토론 스타일도 핫마이크 규칙과 맞다. 2020년 공화당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토론에서 펜스 전 부통령이 발언 도중 끼어들기를 시도하자 해리스 부통령은 "부통령님, 제가 지금 말하고 있다. 자꾸 이렇게 끼어들면 토론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흑인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이 "제가 지금 말하고 있다"며 백인 남성인 펜스 전 부통령에게 정면으로 부딪힌 모습은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해리스는 표현이 장황해 요점을 간결히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는다. BBC는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달 CNN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우리 스스로 시한 설정을 포함해 방침을 내놓아야 할 시급한 문제"라며 대답한 것을 예시로 들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줄일 수도 있는 대답이었다. 이어 BBC는 "토론에서 발언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의미를 짧고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BC는 해리스 부통령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비디오 클립으로 편집돼 SNS로 확산될 수 있다면서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익명의 바이든 측 인사는 "해리스 부통령이 토론을 지나치게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통계, 숫자를 외우는 데 치우쳐 바이든 대통령처럼 토론장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지 걱정된다는 취지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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