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이찬원이 쏘아 올린 세계 소프트테니스 열기...보름달처럼 환하게

김종석 2024. 9. 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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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안성 세계소프트 테니스선수권대회 개회식에서 화려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인기가수 이찬원.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제공

이런 걸 두고 바로 ‘안성맞춤’이라고 할까요.

3일 경기 안성시에서 개막한 제17회 세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의 개회식 공연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이찬원이 바로 그랬습니다. 이날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한 행사는 어느덧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장시간 자리를 지킨 전 세계 31개국 선수와 임원을 합쳐 400여 명의 선수단과 아침부터 연분홍색 드레스 코드와 함께 전국에서 모인 4000명 가까운 이찬원 팬들은 일제히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뜨거운 열기를 보였습니다. 옅은 푸른색 재킷에 흰색 바지 차림의 이찬원이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찬원 화려한 무대 매너...개회식 열기 고조
히트곡 ‘시절인연’ ‘진또배기’를 열창하던 이찬원은 특유의 입담으로도 좌중을 사로잡았습니다. “안성에서 세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가 열린 게 17년 만이라고 들었다. 마침 이번 대회가 17회다. 이렇게 많은 외국인분 앞에서 공연한 건 처음이다. 선수 모두 다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펼치기를 바란다.” 그는 또 “늘 전국 공연을 다니면서 안성휴게소에는 꼭 들른다. 그래서 친숙하다. 안성에서 공연한 적은 처음인데 다시 불러주시면 좋겠다. 안성의 5대 특산물인 쌀, 배, 포도, 한우, 인삼도 즐기시면 좋겠다. 나도 한우를 먹겠다”라며 넉살을 부렸습니다.

관중석으로 내려온 이찬원은 각국 선수단과 어울려 사진을 찍어주며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를 불러 행사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이찬원의 출연료는 거액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회를 축하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 이찬원의 가치는 금액으로 산정하기 힘들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찬원의 출연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 이번 대회는 국제소프트테니스대회로는 최고 권위를 지녔습니다. 1975년 미국 하와이에서 1회 대회가 열린 뒤 국내에서 치른 것은 2011년 문경 대회 이후 13년 만입니다. 앞서 이찬원이 언급했듯이 안성은 2007년에 대회를 유치했습니다.

오대양 육대주 모두 참가...진정한 세계선수권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와 국제소프트테니스연맹을 동시에 이끄는 정인선 회장은 주인식 전 문경시청 감독을 대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임한 뒤 김태주 협회 사무처장 등과 1년 가까이 대회 준비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 결과 ‘세계’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오대양 육대주에서 모두 출전국이 나오는 매머드급 규모가 됐습니다. 한국과 일본, 대만의 세계 3강을 비롯해 중국,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 아시아권에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유럽국에 미국(북미), 브라질(남미), 뉴질랜드(오세아니아), 보츠와나(아프리카)도 참가했습니다. 


<사진> 안성 세계소프트 테니스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아프리카 보츠와나 선수단과 김태성 전남소프트테니스협회 회장 등 관계자. 보츠와나 선수단을 이끄는 김장수 감독은 한국 대표팀 김백수 감독과의 친분으로 이번에 출전하게 됐다. 대한 소프트테니스협회 제공

김보라 안성시장이 이끄는 안성시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등의 지원에 힘입어 안성맞춤 종합운동장 소프트테니스장의 개보수에 들어가 비가 와도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돔 형태의 코트를 8개 면으로 늘려 전천후 경기장의 면모를 갖췄습니다. 리모델링에 투입된 예산만도 45억 원에 이른다고 하네요. 김보라 시장은 “안성은 초, 중고, 대학팀이 모두 있는 소프트테니스의 고장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안성의 멋과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소프트테니스는 한국 스포츠의 효자 종목입니다. 비록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휩쓸었습니다. 17년 전 안성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은 금메달 7개 가운데 6개를 석권했습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두 대회 모두 7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국내 최초 단일스포츠 대회...100년 넘는 역사
한국 소프트테니스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아일보는 1923년 제1회 조선 여자정구대회를 개최했는데 국내 단일대회 가운데는 최고 역사를 지녔습니다. 당시 보도를 보면 서울 정동 제1고등여학교에서 열린 대회에는 관중이 3만 명이나 몰려들었습니다. 경성 인구가 30만 명이던 시절이었으니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할 수 있으시겠죠. 남성들의 관람을 막은 탓에 남자들은 긴치마에 댕기 머리 휘날리며 공 때리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학교 담장을 올랐다가 담벼락이 무너져 배추밭이 망가졌다네요. 

2022년에는 뜻깊은 제100회 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여성 스포츠 대회로 출발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여성들의 바깥 외출도 하기 힘든 시절에 여성만이 참가하는 운동 대회라니요. 새로운 세상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 1923년 열린 동아일보 주최 제1회 전조선 여자정구대회 모습. 국내 최초의 단일종목대회로 시작됐다. 동아일보 캡처

채널에이 혼복 남녀복식 생중계...개회식 하이라이트
이번 대회는 4일부터 9일까지 남녀 단식, 남녀 복식, 혼합 복식, 남녀 단체전 등 7개 종목에서 열전을 벌입니다. 김백수(순천시청) 남자팀, 곽필근(안성시청) 여자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은 금메달 2개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직전 대회인 2019년 중구 타이저우 대회에서 한국은 남자 단식과 혼합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한국 혼합 복식은 2003년 일본 히로시마 대회부터 5개 대회 연속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안성에서 6연패에 도전하는 셈이지요.

채널에이는 6일 오후 혼합 복식 결승을 생중계할 예정입니다. 7일에는 채널에이 플러스에서 남자 복식과 여자 복식 결승을 생중계합니다. 경기 중계 사이에는 이찬원 공연을 비롯한 개회식 하이라이트도 방영될 계획이라 그날의 생생한 현장을 다시 한번 느낄 것 같습니다.


<사진> 안성 세계소프트 테니스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저변 확대...올림픽 종목 염원
1960년대까지 국민 스포츠로 넓은 저변을 확보하던 소프트테니스는 1970년대 들어 테니스와 경쟁하면서 비인기 종목이라는 아쉬움을 남긴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성형외과 의사 출신인 정인선 회장이 협회 수장에 오른 뒤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의 동반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소년체전에 소프트테니스 개인전을 신설해 경기력 향상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제 국제 연맹 회장으로서 정 회장은 평소 “소프트테니스가 올림픽 종목이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종목이 되기 위해서 테니스와의 협력도 중요해 보입니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의 비대화를 지양하고 있습니다. 소프트테니스 역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려면 테니스의 서브 종목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소프트테니스가 일부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즐기는 스포츠라는 인식 개선이 절실합니다. 정인선 회장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등지에 소프트테니스 보급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프트테니스 종주국인 일본 역시 스포츠외교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다음 아시안게임은 2026년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됩니다. 2030년 아시안게임의 개최지는 카타르 도하이고요. 중동은 소프트테니스의 불모지나 다름없습니다. 올림픽은 고사하고 아시안게임 종목으로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필자는 25년 가까이 소프트테니스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정이 깊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을 떠나 오랜 역사와 함께 한국 여성 스포츠의 효시가 된 소프트테니스가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을까요. 몇몇 개인이 아니라 정부 당국의 지원도 분명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가뜩이나 인구 감소 영향으로 다수의 인원이 필요한 구기종목의 국제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진> 안성 세계소프트 테니스선수권대회 여자 단식에서 한국의 첫 금메달을 장식한 이민선(NH농협은행)

NH농협은행 이민선 여자 단식 금메달...한국 선수 첫 우승
마침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한국의 첫 금메달은 여자 단식에서 나왔습니다. 이민선이 그 주인공이 됐네요. 이민선은 5일 여자 단식 결승에서 국가대표팀 후배 엄예진(문경시청)을 4-0(4-2, 4-1, 4-0, 4-1)으로 완파했습니다.

이민선은 “그전 세계대회에서도 그렇고 지난해 아시안게임 때도 일본 선수들한테 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는데, 그게 경험이 됐던 것 같다. 한국에서 세계대회가 개최된 만큼 조금 더 독하게 금메달이 간절했던 것 같고 그래서 잘됐다. 너무 좋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오른 것은 2015년 인도 뉴델리 대회 때 김지연 이후 9년 만입니다. 소프트테니스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출신인 장한섭 NH농협은행 스포츠단 단장은 “한국 남자 선수가 결승에서 패해 이민선 선수의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강자들을 차례로 꺾으면서 자신감이 올라간 것 같다. 이민선 선수의 금메달이 한국 선수단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 심판부장을 맡고 있는 유영동 NH농협은행 감독은 “큰 대회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금메달을 딴 이민선 선수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남은 경기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라고 기뻐했습니다.


<사진> 안성 세계소프트 테니스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시상식 모습

다시 이찬원 얘기를 해볼게요. 그의 걸작 ‘진또배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어~ 어야디야. 풍악을 울려라. 만선이다. 신나게 춤을 추자. 풍년이다.‘

어느새 추석도 얼마 안 남았네요. 한국 소프트테니스가 안성에서 보름달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응원해 봅니다. <안성에서>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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