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에 KTAS 들여온 의사 "이걸로 경증 분류해선 안 돼" 발끈
정부가 응급실 과밀화를 막기 위해 응급실에 온 '경증' 환자에 대해 총진료비의 90%를 내게 하려는 정책을 내놨는데, 정부가 설정한 경증 환자 분류 기준에 대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KTAS(케이타스·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 4·5급에 해당하면 경증 환자로 분류하겠단 건데, 등급을 기계적으로 나눌 수 있는 의학적 지표가 없어 문제가 생길 수 있단 지적이다. 특히 KTAS의 국내 도입을 이끈 의대 교수마저 '엉터리 정책'이라며 비판하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KTAS 4·5등급을 경증이라고 판단할 의학적 근거 자체가 없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KTAS 4·5급을 경증환자의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정책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고 했다. 조 교수는 2012년 보건복지부가 발주한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체계 표준화 연구'를 주도하며 KTAS의 국내 도입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에 KTAS가 도입된 건 2016년이다. 2012년 캐나다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CTAS(씨타스)를 우리나라 의료상황에 맞게 변형한 것인데, CTAS는 응급실 간호사가 '빨리 볼 환자', '좀 천천히 봐도 되는 환자'를 1차로 가려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환자가 의사를 만나기까지의 시간을 환자 상태별 조정하기 위해서다.
조석주 교수는 당시 국내 응급실에서 환자를 체계적으로 진료하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복지부에 '한국도 KTAS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창해왔다. 이후 조 교수는 우리보다 CTAS를 먼저 도입한 일본의 JTAS(제이타스) 시스템을 참관하기 위해 2012년 복지부 주요 관계자, 유인술(충남의대 교수) 당시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과 함께 일본 현지를 답사하기도 했다.
이후 2016년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KTAS가 전국 응급실에 의무적으로 적용됐다. 현재 KTAS의 판권은 대한응급의학회가 갖고 있다. 조석주 교수는 "캐나다에선 응급실에 환자가 왔을 때 의사가 너무 바빠, 간호사가 환자를 먼저 본다"며 "이 환자가 의사를 보기까지 얼마나(바로, 15분 후, 30분 후 등) 기다릴 수 있을지를 CTAS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원리를 적용한 KTAS를 정부가 원래 취지와 달리, 아무 데나 갖다 쓰려 한다"며 "환자 스스로 경증인지 중증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응급실에 와서야 의료진 판단으로 알 수 있는데, 현재 정부 정책대로라면 어쩔 수 없이 응급실에 온 환자가 진료비를 왕창 떠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KTAS 4·5등급으로 분류돼 돈(본인부담금)을 왕창 매기면, 돈 없는 사람은 '나 이제 응급실 못 가겠다' 이런 식이 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환자 본인이 전화해서 (경·중증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아픈 정도와 상관없이 '의식이 있다'면 모두 경증이라는 주장이다. 박 차관은 "중증은 거의 의식 불명이거나 본인이 스스로 뭘 할 수 없는 마비 상태의 경우"라며 "그렇지 않고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프거나,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난다면 경증"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조석주 교수는 "초응급인 심근경색 환자도 응급이지만 쓰러지기 전까지 의식이 있다"며 "'의식이 있다면 경증'이라는 박 차관의 말은 엉터리"라고 날을 세웠다.
조 교수는 △KTAS 1·2·3등급과 4·5등급 △내원수단(환자 스스로 내원, 구급차 이송, 병원 간 전원)으로 중증도를 얼마나 더 잘 가려낼 수 있는지를 비교 연구한 논문을 2018년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각 그룹의 실제 입원율, 중환자실 입실률, 사망률 등을 비교했더니 내원수단으로 경중을 가려낼 때 KTAS를 적용할 때보다 실제 진료 결과와의 상관도가 더 높았다. 내원수단으로 환자의 경중을 분류하는 게 더 정확했다는 의미다. 내원수단별 중증 환자는 '병원 간 전원' > '구급차 이송' > '직접 내원' 순으로 많았다. 스스로 찾아온 사람에게서 경증 환자가 가장 많았다.
조 교수는 "전혀 의학적 근거도 없는 KTAS로 경중을 매기려는 건 엉터리"라며 "특히 KTAS 3등급과 4등급 간 구분이 굉장히 어려운데, 4등급으로 구분돼 진료비를 왕창 내게 되면 억울해하는 환자가 생겨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그는 한국 응급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내원수단에 따라 경중을 구분하고, '장기적'으로는 환자의 흐름을 조정하는 체계(※그림 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①환자가 스스로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결정하는 단계→ ②환자의 전화를 받은 사람(예전의 1339센터)이 응급상태를 파악해 어느 응급실로 가야 할지, 실제로 당장 구급차 불러주거나, 아니면 내일 외래진료를 가는 게 더 나을지 판단해주는 단계→ ③구급대원이 갈 병원을 선정해 환자를 이송하는 단계가 원활히 이뤄지는 체계를 그는 제안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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