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국산 테이저건’ 도입 무산...계약금 29억도 못 돌려받고 제조사와 소송중
2023년 납품 검사 연달아 불합격
제조사는 납품 검사 이의 제기 소송, 돈 반환하지 않아
”무리하게 도입하려다 예산 낭비 우려”
결국 경찰 미국산 테이저건 87억원 구매
경찰이 용의자를 제압하기 위해 세 번 연속 발사할 수 있는 ‘국산 테이저건’(권총형 전기충격기)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안전 기준 미달로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5일 파악됐다. 특히 경찰은 지난 2022년 이 테이저건 구매 계약 차원에서 총 29억 4300만원을 국내 제조사에 선입금했는데, 이후 테이저건 도입이 무산됐음에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현장 경찰관들에게 보급될 테이저건 사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추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총 13억원(정부 출연 10억원)을 들여 세 번 연속으로 쏠 수 있는 국산 테이저건을 개발했다. 당시 현장 경찰관들이 보유했던 테이저건은 미국 액슨사의 ‘X26 테이저건’으로, 한 번 장전에 단 한 번의 발사만 가능했다. 다시 쏘려면 10초 이상 시간이 걸려 범인을 마주한 급박한 상황에서는 사실상 재사용이 어려웠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추진한 사업이 테이저건의 국산화였다. 전량 수입하던 테이저건의 국산화가 가능해지면 대당 200만원 정도 하던 단가도 저렴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 테이저건은 작년 7월 1차 납품 검사에서 안전 기준에 미달했다. 그해 10월 2차 검사에서도 재차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결국 경찰은 장비에 대한 보완과 납품 검사에 필요한 기간을 고려할 때 연내 납품이 어려운 것으로 판단, 조달청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그해 12월 계약을 해지했다.
경찰이 예산을 쓸 목적으로 안전 기준도 통과하지 못한 테이저건을 무리하게 보급하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도 예산에 테이저건 구매가 잡혀있었기 때문에 이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서둘러 구매 계약을 맺은 셈이다. 경찰은 2019년 말 시제품 100정 구매 후 2021년 11월까지 전수 검사를 벌였고 성능을 개선했다고 한다. 이후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100정을 현장 시범 운용했다고 한다. 그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2022년 11월 “2023년 2월까지 납품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테이저건본체 2755정, 카트리지 8만3300발에 대한 총 36억8000만원의 80%에 해당하는 29억4300만원을 2022년도 경찰 예산 선금으로 제조사에 지급한 것이다. 경찰은 잔금 7억 3600만원에 대해서만 2023년도 예산으로 이월했다.
경찰은 테이저건 도입이 무산됐음에도 제조사에 선지급한 29억 43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제조사가 경찰청을 상대로 납품 검사 결과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소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청은 국산 테이저건 구매가 무산됨에 따라 대신 미국산 테이저건(카트리지 포함)을 구매하는 데 총 87억원 가량을 썼다. 경찰청은 국산 테이저건 제조사가 품질을 보완한다면 업체간 경쟁을 통해 도입 여부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장비 도입 과정에서 잡음이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재 현장 경찰에 보급된 38구경 리볼버 권총은 살상력이 높아 피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경찰은 플라스틱 재질 탄환을 사용해 위력이 기존 권총의 10분의 1 수준인 저위험 권총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경찰이 현장 경찰관에게 보급될 ‘저위험 권총’은 1차, 2차 테스트에서 경찰 자체 성능 기준에 미달했다. 지난해 실시한 1차 검증 테스트 때는 경찰이 설정한 목표 15개 항목 중 4개가 기준 미달이었다. 올해 4~6월 2차 검증 테스트 땐 , 2개 항목에서 기준에 미달했다. 경찰은 “목표를 미충족했지만, 목표에 근접하거나 국제표준을 충족했으며, 전문가들도 ‘현장 도입 적정’ 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향후 저위험 권총에 대한 시범 운용, 테스트 등을 추가로 진행해 100%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저위험 권총 도입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국산 테이저건 도입 때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도록 검증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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