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중산층이라고요? [아침햇발]
안선희|논설위원
대부분의 정부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중산층을 중요시한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것은 경제성장의 결과이기도 하고 성장을 더 촉진한다고 믿어진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사회 안정과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막상 ‘중산층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명확한 답을 하기 쉽지 않다. ‘중산층’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재산의 소유 정도가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의 중간에 놓인 계급”이라고 나온다. 중산층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별로 없는 고풍스러운 정의다.
좀 더 실용적인 기준은 경제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것이다. 오이시디는 중산층을 중위소득의 75~200%인 가구로 정의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초 펴낸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황수경·이창근) 보고서는 이 기준을 한국 현실에 대입했다.
그 결과 중산층의 연간 소득은 2021년 4인 가구 기준으로 4816만원에서 1억2817만원 사이다. 월 소득으로는 401만~1068만원이 된다. 월평균 소비지출은 358만원이고, 순자산 평균은 5억4천만원 정도다. (2021년 기준이니 지금은 조금씩 액수가 더 올랐을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상층은 전국민의 14.4%, 중산층은 50.6%, 하층은 35.0% 정도를 차지한다.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사는 데 큰 지장 없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진 보통 사람’이라는 사회 통념에 대략 부합한다.
현 정부도 ‘중산층’을 내세운 정책을 많이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31일 국무회의에서 “경제성장과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채 25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상속세의 세율과 면세 범위를 조정하고, 자녀공제액도 기존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확대하여 중산층 가정의 부담을 덜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이런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윤 대통령은 3월19일 민생토론회에서는 “종합부동산세 대상 중에 거의 대부분이 그냥 중산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법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지난해 29만2545명이 사망(피상속인)했는데, 이 중 상속세 납부 의무가 발생한 피상속인은 1만9944명으로 6.8%였다. 많은 사람은 상속할 재산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각종 공제를 받고 나면 실제 상속세를 내야 할 정도의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는 상위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종부세는 어떤가? 현재 1주택자가 종부세를 내려면 사는 집의 공시가격이 12억원이 넘어야 한다. 시가 기준으로는 15억원이 훌쩍 넘어갈 것이다. 경실련은 우리 국민 중 유주택자는 56.2%, 이 중 12억원 초과는 3.0%로, 종부세 대상은 전체 가구 중 1.7%라고 계산했다. 지난해 종부세를 낸 개인은 41만7천명이었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금융·부동산 등을 합쳐 10억원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한 가구는 전체 가구의 10.3%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속한 계층과 주관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계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꽤 된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가 한국인의 계층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주관적 상층은 3.0%, 주관적 중층은 70.4%, 주관적 하층은 26.7%의 구성을 보인다. 스스로를 상층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3.0%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명백하게 자산과 소득이 10% 안팎에 속해 있는데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보고서는 이들을 ‘심리적 비상층’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고학력자, 관리직·전문직 비중이 높았고 사회적 발언권이 강해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
이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회의 평균보다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평균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정부 정책, 예를 들면 세금 정책 같은 데서 더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려는 것일 게다.
이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건 중요한 건 정부의 대응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을 ‘중산층’이라고 부르며 이들의 요구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 방향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허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상층의 기득권을 더 강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격차를 더 확대할 위험을 키우는 것이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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