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가 흔든 과학, 인류 이익 위해 협력해야

이병철 기자 2024. 9. 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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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일본해 병기를 먼저 제안했다는 데 다소 실망감도 있지만, 학문의 발전이라는 대승적인 차원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과학이 정치에 휘둘리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국내 연구자는 "한국이 일본해 병기까지 제안했는데, 보이콧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서방 국가와 전쟁 중인 러시아도 우주 분야에서는 미국과 협력을 계속 하는데 한일 갈등은 이보다 심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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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일본해 병기를 먼저 제안했다는 데 다소 실망감도 있지만, 학문의 발전이라는 대승적인 차원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과학이 정치에 휘둘리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주 부산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 만난 한 연구자의 아쉬움 섞인 하소연이다. 일본 지질학계가 동해 표기 문제로 국제 학술 행사인 세계지질과학총회를 보이콧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한국 연구진은 당초 동해 단독 표기를 추진했다. 하지만 일본 학계가 일본해 표기를 요구하며 보이콧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표기하는 병기 제안까지 했지만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실제로 보이콧이 이뤄졌고, 일본 연구자를 행사장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국내 연구자는 “한국이 일본해 병기까지 제안했는데, 보이콧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서방 국가와 전쟁 중인 러시아도 우주 분야에서는 미국과 협력을 계속 하는데 한일 갈등은 이보다 심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과학은 과거부터 보이지 않는 외교 전쟁터였다.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의 이념 갈등이 한창이던 냉전시대의 우주 개발 경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냉전이 해체되면서 우주는 갈등을 벗어나 협력의 상징이 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공동 운영하며 우주과학의 초석을 마련한 동반자가 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하며 다시 갈등이 커졌지만, 우주에서만큼은 협력이 이어졌다. 러시아연방우주국(ROSCOSMOS·로스코스모스)과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우주정거장에서 양국 우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우주인의 안전을 위해 함께 지원해 나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과 일본의 동해 갈등은 불편하더라도 협력을 택한 미국과 러시아의 사례와 대비된다. 이번 행사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진 가능성과 해저자원 채굴, 원전 폐기물 등 한일 과학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이 많았지만 일본의 보이콧으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사실 정치가 과학 협력을 막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여러 과학 연구에서 서구와 러시아의 협력이 중단됐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카니스탄을 재장악하면서 서구와의 협력을 금지하자 국제 공동 연구를 하던 과학자들이 해외로 탈출했다.

과학계는 정치가 국제 협력을 막지 않도록 여러 방안을 강구했다. 일례로 국제수로기구(IHO)는 더 이상 바다를 동해나 일본해로 부르지 않는다. 국제수로기구(IHO)는 2020년 디지털 해도집 표준을 새롭게 정하면서 바다의 고유 명칭 대신 숫자로 이뤄진 코드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과학계에서 의미 없는 명칭을 놓고 일본 과학계가 보이콧을 하면서 정작 중요한 과학적 논의와 협력은 물 건너갔다.

일본 과학자들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요구한 이유가 무엇이든 인류의 발전이라는 과학의 목표와 학술 행사의 취지를 해치는 행동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과학기술계가 국제 정세와 관계 없이 협력해 나간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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