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이상 유고 노트 첫 공개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
국립한국문학관(관장 문정희)이 요절한 천재 문인 이상(1910~1937)의 유고 노트 원본을 5일 공개했다. 70여쪽 분량의 일본어로 쓴 노트로 ‘공포의 기록’ ‘1931년’ 등 총 23편의 습작이 담겼다.
1955년 문예지 ‘현대문학’을 창간한 문학평론가 조연현(1920~1981)의 유족이 기증했다. 1960년 조연현은 당시 학생이던 이연복으로부터 ‘이상 유고’ 노트 뭉치를 전달받아 그 존재를 알렸다. ‘현대문학’(1960년, 1966년)과 ‘문학사상’(1976년, 1986년) 등에 김수영·김윤성·유정의 번역으로 발표된 적은 있지만, 원문이 실물로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노트는 조연현 평론가 사후 종적이 묘연했으나 유족이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한국문학관은 “이상 전문가인 김주현 교수(경북대 국어국문학)와 함께 자료 원본 여부를 검증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번 유고에는 이상의 자필서명이 남아 있는데 그 필체가 ‘전원수첩’에 실린 것과 같다”고 했다.
또 정인택(1909~1952)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상의 아포리즘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는 문장을 자필로 유고에 남긴 점, 소설로 추정되는 ‘불행한 계승’에 ‘箱(상)’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 등을 통해 유고가 원본임을 확정했다. 이상은 평소 자신을 소설에 자주 등장시키는 창작 스타일을 보였다.
국립한국문학관 관계자는 “이상의 일본어 창작은 제국과 식민의 지배관계를 예민하게 자각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역설적 선택”이라며 “이번 유고 발굴과 공개는 이상 문학의 심층을 이해하는 중요한 전거”라고 했다. 이상 유고 원본은 오는 28일 개막하는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희귀자료 전시인 ‘한국문학의 맥박 전(展)’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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