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사진 올리기 겁나요"…조직적 디지털 성폭력 키운 건 누구?
"온라인 공간에 사진 올리기가 겁나요"
지난달 딥페이크(허위합성영상물) 성폭력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많은 여학생들이 sns 공간에 올린 프로필 사진 등 개인 사진을 내리거나 계정을 폐쇄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겨레> 보도로 알려졌듯 한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는 2만명이 가입할 정도로 성폭력 가담자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정기적으로 지인 사진을 올리라는 지시'에서 알 수 있듯이 운영방식도 심각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딥페이크 성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능욕방' 혹은 '겹지인방'이라고 불리는 텔레그램 채널 가입자 대부분 남성이었고 10대와 20대가 많았다.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으로 학생 외에도 교사, 연예인 등 나이와 직업 등이 다양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올해 1~7월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로 검거된 178명 중 10대가 131명(73.6%), 20대가 36명(20.2%), 30대가 10명(5.6%), 40대는 1명(0.6%)이었다. 이는 지난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이틀간 조사한 피해 건수 2,492건, 그 중 딥페이크 성착취물 직간접적인 피해 사례는 517건으로 직접 확인된 피해자만 29명(학생 13명·교사 16명)이었다. 그런데도 학교는 '친구끼리니 사과하고 넘어가라'고 할 정도로 학교 당국은 성인지감수성이 없고 피해자 보호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 전반에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자 '인격이 있는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여성혐오 문화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10대 가해자들은 "호기심","장난"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도 남성 중심의 성차별 관행은 성폭력을 호기심과 장난으로 가벼이 취급했다. 시대가 흘러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불법 촬영에서 딥페이크로 방식만 변했을 뿐이다. 여전히 여성은 성적 대상일 뿐이고 언제나 쉽게 모욕해도 되는 존재인 참담한 현실은 그대로다.
이번 사태 전에도 여러 '지인 능욕' 형태의 딥페이크 사건 보도가 여성혐오 문화를 방증한다. 올해 30대 서울대 졸업생 2명이 동문을 대상으로 디지털성범죄를 3년간 저질렀고, 인하대에서 디지털성범죄 가입자만 1200여명인 단체방에서 합성된 나체 사진과 개인정보를 뿌리며 동창들이나 동료 여학생을 능욕했다.
놀이가 된 여성혐오는 누가 키웠나
여성을 동등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보지 않고 멸시하고 능욕하는 여성혐오 문화는 윤석열 정부 들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공언하며 성차별, 성폭력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을 수립하고 대응해야 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정책기조에 기인한다. 심지어 현재 여가부 장관은 5개월째 공석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익명의 보호막에 기대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고 했다. 혐오를 방치하는 정부가 디지털 성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어디 이뿐인가. 기획재정부와 여가부는 여성폭력 대응 예산을 삭감했고, 청소년 성교육 담당하는 성문화센터 예산을 깎았다. 교육청은 진보교육감이든 아니든 학교 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꺼려했다. 최근 해고자 복직 사건으로 물러난 조희연 전 진보교육감이 있던 서울시교육청조차 비슷했다. 시민사회는 A학교 성폭력 사안을 계기로 서울시내 학교 성폭력 실태조사 TF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A학교는 학생들이 성폭력 피해를 확인한 지혜복 교사가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청 학생인권센터 등을 오가면서 애를 쓰자 성폭력을 축소하려는 듯 그를 다른 학교로 보내버린 곳이다. 당사자의 동의없는 부당전보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방조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성폭력 해결을 위한 활동은 공익제보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아니라며 A학교 편에 서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바탕은 일부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며 청소년 성평등 교육을 형식적으로 동영상 틀기로 일관한 학교교육이다. 일선 교사들이 학교에 성평등 예산이 없어 성평등 교육이 어렵다고 호소해도 변하지 않았다.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은 젠더갈등을 부추길 뿐이라며, 성평등 교육이 아니라 성교육으로 축소하며 성평등, 성차별이라는 낱말조차 언급하지 않으려는 교육 관료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교육현장은 성평등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여성혐오와 성폭력을 동급생에게 배우는 공간이 됐다. 스쿨 미투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교육현장. 아니 스쿨미투 이후 교장이나 교감 등 학교 관료들은 이를 해결하기보다 숨기기에 급급했다. 여교사가 남학생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지 오래됐다. 딥페이크 성폭력이 발생했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은 딥페이크 관련 교육을 하라는 공문만 내릴 뿐 아무런 자료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기술발달만 탓할 텐가. 10대들의 AI 기술 습득이 빨라서 디지털 성폭력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디지털 성폭력을 키운 것은 바로 국가기관이며 행정권력이며, 혐오정치다.
디지털 성폭력, 포괄적이고 집중된 대응 필요
경찰은 그동안 '텔레그램이라 잡기 어렵다,' '가해자가 미성년자라서, 학생이라서 압수수색이 어렵다'며 성폭력 해결에 미온적이었다. 심지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최근까지 성기 등 성적 노출이 없다는 이유로 온라인 성폭력을 방치했다. 젠더 관점 없는 성폭력 대응이 여성의 몸을 조각낸 것이다. 사건이 커지자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텔레그램과 페이스북, 엑스, 인스타, 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과 긴밀한 협의체를 구성해서 신속한 삭제 차단 조치를 하겠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니터링 인력을 조금 늘렸다.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듯이 여가부는 아직까지 딥페이크 성폭력사건의 주무 부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대응이 몇 개월만 반짝하고 그치는 데 있다. 2016년 소라넷 사이트, 2019년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 등이 있었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하기 위한 성평등 정책과 성평등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성평등교육법을 제정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일부 동성애혐오 세력의 민원으로 성평등 도서를 폐기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학교만이 아니라 일터에서도 성평등 교육은 성희롱 예방 영상 틀기로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폭력의 형태와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성평등 교육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뒤로 가니 이러한 대규모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기 쉽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을 접하며, 용기를 내어 학교 내 성폭력을 말했던 A학교 피해 학생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냉소와 무기력의 마음만은 아니길 바란다. '불안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되찾자'고 9월 6일 서울 보신각에서 모이기로 한 만큼, 이곳에 와서 '성폭력 퇴출과 성평등'을 외치면 좋겠다. 그날은 나이와 성별을 넘어 성평등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함께 모일 테니까. 당장은 성폭력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성평등은 더디지만, 함께 용기 내 외치자.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가자.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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