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금수저, 서울대 싹쓸이"…유례 없는 '극약 처방' 나왔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9. 5. 15:57
[귀에 쏙 취파] 귀에 쏙! 귀로 듣는 취재파일
전 세계적으로 명문대학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여겨집니다.
이들 대학의 입학 경쟁은 치열하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이유로 졸업 후 '괜찮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인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명문대 졸업생들의 '괜찮은 미래'는 여러 연구 결과로 뒷받침됩니다.
2012년 비교경제학저널에 실린 중국 사례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칭화대나 베이징대 같은 엘리트 대학 졸업생은 다른 대학 졸업생보다 평균 26.4% 더 높은 초봉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엘리트 대학 졸업에 아버지의 교육 수준까지 높으면, 8.2% 포인트 더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명문대 졸업장이 가정 배경과 결합하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겁니다.
국내 연구도 있습니다.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명문대 졸업자들은 노동시장 진입 시 14% 정도 높은 임금을 받았고, 40~44세가 되면 그 격차가 46.5%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는 명문대 졸업의 효과가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지속되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명문대 졸업 혜택은 단순히 임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명문대 졸업장은 단순한 학력의 차이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많은 사회 연구를 통해 명문대 졸업자가 승진과 결혼, 사회적 네트워크, 정치적 영향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교육을 통한 명문대 진학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지름길로 여겨집니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대치동에 몰려들어 치열한 입시 경쟁에 매진하는 풍경은 딱히 놀랍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최근 서울대와의 공동 심포지엄 자리에서 매우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습니다.
서울대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따라 뽑게끔 하는, 이른바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겁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 뜬금없이 대학 입시 제도를 뜯어고치자는 의견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행의 제안은 단순히 교육 기회의 균등을 넘어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경제적 효과를 노린 겁니다.
한국은행은 지속된 입시 경쟁이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집값 쏠림'이라는 경제적 부작용까지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한국은행이 싱크탱크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는 시국임을 고려한다면, 한국은행이 <부동산 장벽에 가로막혀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를 항변하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집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님들의 결단으로 변화가 시작돼 특정 지역에 몰린 사교육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지방에서 입시를 위해 서울로 이주해 올 필요가 없어지고, 매년 학기 초에는 대학 정문에 각 지역 고등학교의 입학 환영회 플래카드가 걸리는 다양성이 확보된 대학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은이 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더 안정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은행은 입시 경쟁이 부동산 과열을 야기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2023년 서울의 아파트 매매 상대 가격은 5대 지방광역시 대비 5배를 웃돈다는 점, 강남구와 서초구로의 초중생 전입률이 2011년 1.4%에서 2023년 2.6%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 2023년 강남구와 서초구의 학급당 초중생 수는 25.6명으로 전국 평균인 21.9명보다 약 4명 더 많다는 점 등입니다.
서울 강남 중심으로 교육 목적의 이주 수요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게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은행은 과도한 입시 경쟁이 저출생과 늦은 결혼, 수도권 인구집중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은 지방 소멸이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은 서울대생 지역 할당제 도입을 통해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얽히고설킨 여러 사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 제안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첫째, 교육열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중등교육 성취도가 10% 증가할 때 주택 가격이 7.8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작년 호주의 연구에서도 질 좋은 공립학교가 있는 지역의 주택 가격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눈에 띄게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시드니 일반 주택 기준으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가 1점 높을수록 해당 지역 주택 가격은 3.9% 상승했고, 고등학교 학업성취도의 경우 1점 상승 시 주택 가격은 2.7~2.8% 높아졌습니다.
미국 보스톤과 프랑스 파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도 교육의 질과 부동산 가격 간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즉, 교육열에 따른 부동산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 문제가 이들 외국 도시들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비교가 이뤄져야 개선의 당위성이 생길 텐데, 한국은행 보고서에는 그런 비교가 나오지 않습니다.
둘째, 서울대 지역 할당제 도입에 따른 부동산 안정 기대 효과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앞서 셰필드나 시드니 등은 교육 환경이 좋으면서도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져서 살기가 좋은 도시입니다.
즉, 교육 환경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높은 지역에 대한 수요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교통의 편리성, 문화 시설과 상권 집중, 대기업 본사의 밀집, 일자리의 풍부함 등 다른 환경적 요인들이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 이주 수요만 제거한다고 해서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이 반드시 멈출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셋째,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정부와 대학, 고등학교, 학부모, 학생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울 강남의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 기회가 줄어들 걸로 우려해 상당한 반대를 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미 잠재력 있는 상위권 학생들이 강남에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입시 경쟁 모수가 되는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기준으로 정한다면 실질적인 경쟁률이 치솟게 되기 때문입니다.
단지 강남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입시 경쟁이 불리해진다면 기본권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서울대도 고민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지역 인재 확보와 입시경쟁 실종에 따른 학생 수준 저하를 놓고 득실을 저울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인간의 본성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차곡차곡 만들어진 '대치동 공화국' 체제를 허물기 위해선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 주장처럼 완전한 형태의 지역 할당제를 시행하는 대학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역이나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고려해 부분적인 할당제나 우대 정책을 시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죠.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의 제안은 '극약 처방'에 가깝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서울대생 지역 할당이 '강남 집값' 해결할까?
이들 대학의 입학 경쟁은 치열하죠.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이유로 졸업 후 '괜찮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인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명문대 졸업생들의 '괜찮은 미래'는 여러 연구 결과로 뒷받침됩니다.
2012년 비교경제학저널에 실린 중국 사례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칭화대나 베이징대 같은 엘리트 대학 졸업생은 다른 대학 졸업생보다 평균 26.4% 더 높은 초봉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엘리트 대학 졸업에 아버지의 교육 수준까지 높으면, 8.2% 포인트 더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명문대 졸업장이 가정 배경과 결합하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겁니다.
국내 연구도 있습니다.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명문대 졸업자들은 노동시장 진입 시 14% 정도 높은 임금을 받았고, 40~44세가 되면 그 격차가 46.5%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는 명문대 졸업의 효과가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지속되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걸 보여줍니다.
명문대 졸업 혜택은 단순히 임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명문대 졸업장은 단순한 학력의 차이를 넘어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많은 사회 연구를 통해 명문대 졸업자가 승진과 결혼, 사회적 네트워크, 정치적 영향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교육을 통한 명문대 진학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지름길로 여겨집니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대치동에 몰려들어 치열한 입시 경쟁에 매진하는 풍경은 딱히 놀랍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최근 서울대와의 공동 심포지엄 자리에서 매우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습니다.
서울대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따라 뽑게끔 하는, 이른바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겁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 뜬금없이 대학 입시 제도를 뜯어고치자는 의견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행의 제안은 단순히 교육 기회의 균등을 넘어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경제적 효과를 노린 겁니다.
한국은행은 지속된 입시 경쟁이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집값 쏠림'이라는 경제적 부작용까지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한국은행이 싱크탱크로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회 이슈를 공론화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는 시국임을 고려한다면, 한국은행이 <부동산 장벽에 가로막혀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를 항변하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집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님들의 결단으로 변화가 시작돼 특정 지역에 몰린 사교육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지방에서 입시를 위해 서울로 이주해 올 필요가 없어지고, 매년 학기 초에는 대학 정문에 각 지역 고등학교의 입학 환영회 플래카드가 걸리는 다양성이 확보된 대학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은이 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더 안정될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은행은 입시 경쟁이 부동산 과열을 야기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2023년 서울의 아파트 매매 상대 가격은 5대 지방광역시 대비 5배를 웃돈다는 점, 강남구와 서초구로의 초중생 전입률이 2011년 1.4%에서 2023년 2.6%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 2023년 강남구와 서초구의 학급당 초중생 수는 25.6명으로 전국 평균인 21.9명보다 약 4명 더 많다는 점 등입니다.
서울 강남 중심으로 교육 목적의 이주 수요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게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은행은 과도한 입시 경쟁이 저출생과 늦은 결혼, 수도권 인구집중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은 지방 소멸이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은 서울대생 지역 할당제 도입을 통해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얽히고설킨 여러 사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 제안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첫째, 교육열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중등교육 성취도가 10% 증가할 때 주택 가격이 7.8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작년 호주의 연구에서도 질 좋은 공립학교가 있는 지역의 주택 가격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눈에 띄게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시드니 일반 주택 기준으로 초등학교 학업성취도가 1점 높을수록 해당 지역 주택 가격은 3.9% 상승했고, 고등학교 학업성취도의 경우 1점 상승 시 주택 가격은 2.7~2.8% 높아졌습니다.
미국 보스톤과 프랑스 파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도 교육의 질과 부동산 가격 간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즉, 교육열에 따른 부동산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 문제가 이들 외국 도시들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비교가 이뤄져야 개선의 당위성이 생길 텐데, 한국은행 보고서에는 그런 비교가 나오지 않습니다.
둘째, 서울대 지역 할당제 도입에 따른 부동산 안정 기대 효과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앞서 셰필드나 시드니 등은 교육 환경이 좋으면서도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져서 살기가 좋은 도시입니다.
즉, 교육 환경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높은 지역에 대한 수요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교통의 편리성, 문화 시설과 상권 집중, 대기업 본사의 밀집, 일자리의 풍부함 등 다른 환경적 요인들이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 이주 수요만 제거한다고 해서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이 반드시 멈출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셋째,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정부와 대학, 고등학교, 학부모, 학생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울 강남의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 기회가 줄어들 걸로 우려해 상당한 반대를 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미 잠재력 있는 상위권 학생들이 강남에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입시 경쟁 모수가 되는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기준으로 정한다면 실질적인 경쟁률이 치솟게 되기 때문입니다.
단지 강남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입시 경쟁이 불리해진다면 기본권 침해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서울대도 고민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지역 인재 확보와 입시경쟁 실종에 따른 학생 수준 저하를 놓고 득실을 저울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인간의 본성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차곡차곡 만들어진 '대치동 공화국' 체제를 허물기 위해선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 주장처럼 완전한 형태의 지역 할당제를 시행하는 대학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역이나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고려해 부분적인 할당제나 우대 정책을 시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죠.
그런 점에서 한국은행의 제안은 '극약 처방'에 가깝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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