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덤핑 초읽기...'질'보다 '양'으로 세계 시장 흔드나
韓 포함 4개 지역 주문액 다 합해도 中에 못 미쳐
美 제재에 첨단 반도체 생산 막힌 中, 중저가 '레거시' 반도체로 승부
中에서 본격적으로 저가 반도체 쏟아내면 해외 경쟁 업체 위험
덤핑 논란으로 무역 마찰 전망
中 역시 첨단 반도체 노리지만 제재 극복 어려워
[파이낸셜뉴스] 내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 태양광, 철강 등을 과잉 생산하여 헐값에 수출하는 중국이 앞으로 반도체 또한 마구 찍어낼 예정이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생산이 막히자 중저가 반도체를 대량으로 만들어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주문한 금액은 247억3000만달러(약 33조664억원)로 전체 주문액의 약 46%에 달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같은 시기 한국과 대만, 북미, 일본의 주문액을 모두 합해도 236억8000만달러(약 31조6625억원)에 불과해 중국의 주문액을 넘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사재기에는 미국도 한몫했다. 앞서 네덜란드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 ASML은 2010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공개하면서 실리콘 덩어리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 공정에 혁신을 가져왔다. 반도체 강국을 꿈꾸던 중국도 EUV를 구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EUV를 독점 생산하는 ASML에 주문이 밀린 데다 미국의 방해에 부딪쳤다. 과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2018년부터 중국 반도체 산업을 옥죄기 위해 네덜란드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ASML이 중국에 EUV를 팔지 못하게 막았다. ASML은 대신 중국에 상대적으로 구형인 심자외선(DUV) 장비를 팔았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2022년 10월 중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미국산 장비 수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ASML과 반도체 장비 매출 3위 업체인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에게 규제 동참을 요구했다.
이에 중국 업계는 '레거시 반도체'에 집중했다. 레거시 반도체는 마이크로컨트롤러칩, 전력관리반도체 등 비교적 옛날 공정으로 제작되어 구조가 단순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이들은 최신 반도체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공정으로 제작되는 반면 주로 28㎚ 공정으로 생산된다. 레거시 반도체는 자동차와 전자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생산 업체 입장에서 제품당 마진이 낮아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한다.
이미 중국은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등을 헐값으로 수출하는 '덤핑' 의혹 때문에 유럽연합(EU)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미 EU는 지난달 중국산 전기차에 9~36.3%의 추가 관세를 붙인다고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일 중국 시장정보업체 마이스틸을 인용해 올해 중국의 철강 수출량이 1억~1억100만t으로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대라고 예측했다. 일본 컨설팅업체 아스트리스어드바이저리의 이언 로퍼 원자재 전략가는 "중국이 전 세계에 철강이 넘쳐나게 하고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면서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일단 중국은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 수석 강사로 활동하면서 홍콩 비영리 연구단체 하인리히재단의 연구원을 맡고 있는 알렉스 카프리는 "중국이 레거시 칩을 생산하는 길을 잘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세계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29%에서 2027년 33%로 상승한다고 추정했다.
카프리는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를 넘어 첨단 반도체에 진출할 가능성에 대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중국 전자기업 화웨이는 지난해 8월 고급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하면서 중국 반도체 기업 중신궈지(SMIC)의 7nm 공정 기술을 사용한 반도체를 탑재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화웨이는 올해 3월 광둥성 선전의 반도체 장비 업체 사이캐리어와 협력해 5nm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자가 정렬 4중 패턴화(SAQP)’ 기술을 개발했다며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에 특허를 신청했다. 화웨이는 특허 관련 서류에서 자신들의 특허가 있다면 EUV 노광장비 없이 DUV 노광장비로 5nm 공정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외 전문가들은 DUV로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는 있지만 단가가 비싼데다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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