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덤핑 초읽기...'질'보다 '양'으로 세계 시장 흔드나

박종원 2024. 9. 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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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반도체 제조장비 46%는 中에서 구입
韓 포함 4개 지역 주문액 다 합해도 中에 못 미쳐
美 제재에 첨단 반도체 생산 막힌 中, 중저가 '레거시' 반도체로 승부
中에서 본격적으로 저가 반도체 쏟아내면 해외 경쟁 업체 위험
덤핑 논란으로 무역 마찰 전망
中 역시 첨단 반도체 노리지만 제재 극복 어려워
지난 4월 29일 중국 장쑤성 화이안에서 촬영된 반도체 공장 내부. 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내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 태양광, 철강 등을 과잉 생산하여 헐값에 수출하는 중국이 앞으로 반도체 또한 마구 찍어낼 예정이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생산이 막히자 중저가 반도체를 대량으로 만들어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추정된다.

韓 포함 경쟁국 설비 투자 다 합해도 中에 못 미쳐
세계적으로 약 3000개 회원사를 거느린 다국적 반도체 업계단체인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4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 통계' 보고서를 공개했다. 올해 2·4분기 전 세계 반도체 제조장비 주문 규모는 268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4% 증가했으며 전 분기보다는 1% 늘었다. SEMI의 아짓 마노차 회장은 "올해 상반기 반도체 제조장비 주문 총액은 532억달러(약 71조1284억원)로 업계 전반에 건강한 성장세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주문한 금액은 247억3000만달러(약 33조664억원)로 전체 주문액의 약 46%에 달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같은 시기 한국과 대만, 북미, 일본의 주문액을 모두 합해도 236억8000만달러(약 31조6625억원)에 불과해 중국의 주문액을 넘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사재기에는 미국도 한몫했다. 앞서 네덜란드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 ASML은 2010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공개하면서 실리콘 덩어리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 공정에 혁신을 가져왔다. 반도체 강국을 꿈꾸던 중국도 EUV를 구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EUV를 독점 생산하는 ASML에 주문이 밀린 데다 미국의 방해에 부딪쳤다. 과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2018년부터 중국 반도체 산업을 옥죄기 위해 네덜란드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ASML이 중국에 EUV를 팔지 못하게 막았다. ASML은 대신 중국에 상대적으로 구형인 심자외선(DUV) 장비를 팔았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2022년 10월 중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미국산 장비 수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ASML과 반도체 장비 매출 3위 업체인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에게 규제 동참을 요구했다.

이에 중국 업계는 '레거시 반도체'에 집중했다. 레거시 반도체는 마이크로컨트롤러칩, 전력관리반도체 등 비교적 옛날 공정으로 제작되어 구조가 단순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이들은 최신 반도체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공정으로 제작되는 반면 주로 28㎚ 공정으로 생산된다. 레거시 반도체는 자동차와 전자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생산 업체 입장에서 제품당 마진이 낮아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한다.

지난 4월 19일 미국 오리건주 힐스보로의 인텔 공장에서 촬영된 '고개구율 극자외선(High-NA EUV)' 반도체 노광장비. 네덜란드 ASML이 제작한 해당 장비는 기존 EUV 노광장비보다 개량된 최신형 기기다.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덤핑' 공포 확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2년 7월 SEMI 집계를 인용해 2021~2024년까지 4년 동안 중국이 신설하기로 계획한 반도체 공장 숫자가 31곳이라고 전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로 같은 기간 대만(19곳)과 미국(12곳)이 계획한 건설 건수를 압도하는 숫자다. SEMI에 의하면 중국이 반도체 제조장비 주문액은 미국의 제재가 발표된 2022년에 280억달러 수준이었지만 2023년에 366억달러(약 48조9342억원)로 늘었다. 올해 총 주문액은 35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SEMI의 클라크 쳉 수석 이사는 중국의 장비 사재기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지다가 내년에는 주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쳉은 제조장비에 대한 과잉 투자가 "미래에 효율성 감소 혹은 가동률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에 쏟아진 중국 반도체들이 중국 밖 경쟁자들에게 가격 인하 압박을 가한다고 예측했다.

이미 중국은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등을 헐값으로 수출하는 '덤핑' 의혹 때문에 유럽연합(EU)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미 EU는 지난달 중국산 전기차에 9~36.3%의 추가 관세를 붙인다고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일 중국 시장정보업체 마이스틸을 인용해 올해 중국의 철강 수출량이 1억~1억100만t으로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대라고 예측했다. 일본 컨설팅업체 아스트리스어드바이저리의 이언 로퍼 원자재 전략가는 "중국이 전 세계에 철강이 넘쳐나게 하고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면서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일단 중국은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 수석 강사로 활동하면서 홍콩 비영리 연구단체 하인리히재단의 연구원을 맡고 있는 알렉스 카프리는 "중국이 레거시 칩을 생산하는 길을 잘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세계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29%에서 2027년 33%로 상승한다고 추정했다.

카프리는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를 넘어 첨단 반도체에 진출할 가능성에 대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중국 전자기업 화웨이는 지난해 8월 고급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하면서 중국 반도체 기업 중신궈지(SMIC)의 7nm 공정 기술을 사용한 반도체를 탑재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화웨이는 올해 3월 광둥성 선전의 반도체 장비 업체 사이캐리어와 협력해 5nm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자가 정렬 4중 패턴화(SAQP)’ 기술을 개발했다며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에 특허를 신청했다. 화웨이는 특허 관련 서류에서 자신들의 특허가 있다면 EUV 노광장비 없이 DUV 노광장비로 5nm 공정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외 전문가들은 DUV로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는 있지만 단가가 비싼데다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25일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에서 한 고객이 중국 전자기업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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