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새 학기 덮친 안보몰이에 불안감 확산…“저러다 사람 잡겠다”
로큰롤·팝·인터넷 ‘안보 위험 요인’ 진단
중국 중산층은 불안감…유학 시도 급증
“사람 잡게 생겼더군요. 심지어 훈련 도중 교관이 쓰러졌어요.”
올해 딸을 대학에 보낸 A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딸은 5일 현재 중국 대학 신입생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약 3주 안팎의 훈련기간 중 이틀은 학부모가 참관할 수 있다. A씨는 며칠 전 훈련을 참관했다.
중국은 1984년 대학·고등학교 신입생의 군사훈련을 의무화했다. 1989년 톈안먼 항쟁 이후 사상교육 차원으로 군사훈련이 강조됐다. 칭화대·베이징대 등 공산당 간부를 다수 배출하는 명문대는 군사훈련강도가 높기도 유명하다. 총검술과 20km 야간행군 등이 훈련에 포함된다. 일부 대학은 명문대 평가를 받기 위해 고강도 군사훈련을 홍보하기도 한다.
반면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군사훈련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기간 군사훈련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느슨해지는 분위기였다. 해마다 가혹행위나 사망사고도 발생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군사훈련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하지만 이번 학기 들어 군사훈련 강도가 유독 강해졌다고 전해진다. 중국 지도부가 안보를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학교마다 경쟁적으로 강한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달 25일 산둥성의 한 직업기술고 여학생이 훈련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숨졌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난 4월 의무 군사훈련을 중학생으로 확대하고 초등학생도 수업을 통해 안보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국방교육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일부 중학교는 이미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학교마다 앞다퉈 훈련 영상을 공개하고 있으며 방학 기간 초등학생의 군사캠프 참여도 장려됐다.
올해 대학 신입생들은 군사훈련 후에도 이전과 다른 안보 교육을 받아야 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새 학기 대학 안보 교과서에는 “로큰롤, 팝 음악, 인터넷은 중국 청소년 사이에 ‘컬러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서구의 악덕”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교과서에는 2010년 튀니지 재스민 혁명이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컬러혁명의 사례로 언급됐다. 구소련이 마르크스주의와 일당독재를 포기해서 무너졌다는 내용도 담겼다.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설명회를 열고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안보의식 고취에 이 책을 최대로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컬러혁명은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벌어진 민주화 요구에 따른 일련의 정권교체를 일컫는 말이다. 러시아에서는 ‘서방의 배후 조종으로 일어난 혁명’이란 의미가 담긴 멸칭으로 사용한다. 시 주석은 2018년 전국교육대회에서 외세가 중국 청소년을 서구화하면서 컬러혁명을 획책했다고 연설한 바 있다.
지난 2월 편찬된 <중화민족 공동체 입문>도 많은 대학에서 필수 교재로 선택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지난 2014년 시 주석이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이라는 용어를 공식 언급한 이후 개념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학자들이 10년 동안 투입돼 만든 책이다.
책은 55개 소수민족의 구분을 없애고 중화민족만을 역사의 주체로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5호16국 시대를 이민족에 의한 침략으로 혼란을 겪은 시대가 아니라 여러 민족이 중화민족으로 융합하는 시대라고 서술한 것이 단적이다.
시 주석은 2013년 취임 후 지속적으로 안보와 애국심을 강조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도 최근이 조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애국심이 중요하다는 점을 더욱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정작 중국 젊은이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점도 애국·안보 교육 강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 중산층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베이징의 한 학부모는 “올해 입시에서 중국인들이 많이 진학하는 싱가포르 학교의 경쟁률이 기록적으로 높아져 합격선도 올라갔다”고 전했다. 인터넷 통제도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짙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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