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4.의왕 철도박물관

이정민 기자 2024. 9. 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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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차여행’이란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설레는가.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라는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2004년 3월까지 운행된 ‘통일호’ 열차도 처음에는 요금이 가장 비싼 급행열차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기차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러 의왕으로 향한다.

의왕시 월암동에 위치한 철도박물관은 1988년 개관돼 120여년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와 기록을 전시,연구하고 있다.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 대한민국의 역사와 추억이 공존하는 공간

전철 1호선 의왕역 2번 출구에서 의왕 철도박물관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철도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거리의 이름이 ‘철도박물관로’다. 박물관 주변에 코레일 인재개발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국립 한국교통대가 모여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를 표현한 조각을 만난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고전미를 풍기는 박물관 본관의 외관 문양이 독특하다. ‘우리 철도는 나라의 대동맥으로서 한 세기를 힘차게 달려왔으며, 오늘에 이르러 지나온 철마의 발자취를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여기 철도교육단지 머리에 철도박물관을 짓고 이 기념비를 세워 감격을 새겨 기리노라. 미당 서정주는 글을 짓고 최기덕 철도청장은 삼가 이 기념비를 세우다.’ 1988년 1월에 세운 ‘철도문화전당’ 기념비의 기단에 새겨진 글이다.

철도모형 디오라마실에서 어린이들이 다양한 기차모형이 운행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윤원규기자

오후 2시, 서둘러 ‘철도모형 디오라마실’부터 찾는다. 여러 대의 모형 열차가 빌딩 숲을 이룬 도시를 가로지른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 “출발!” 기관사 복장의 직원이 한창 해설 중이고 맞은편 관람석에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달리는 기차를 보며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비둘기호 출발!” 진행자의 선창에 어린아이와 젊은 부부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출발!” 증기기관차가 달리고 새마을호와 KTX도 레일 위를 힘차게 달린다. 대한민국 철도의 과거와 현재를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전달하는 진행자의 말솜씨에 빠져든다. 이번에도 진행자의 선창을 따라 한목소리로 외친다. “정차!” 불을 켜고 레일 위를 달리던 1호선 열차, KTX가 속도를 줄이더니 제자리에 멈춰 선다. 철도모형 디오라마실은 평일에는 오전 11시30분, 오후 2시 두 차례, 주말에는 오전 11시30분, 오후 1시30분, 3시30분, 5시 등 네 차례 운영한다.

밖으로 나오자 두 분의 문화해설사가 기다리고 있다. 1기 김은희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관람을 시작한다. 중앙홀 맞은편 벽에 걸린 대형 흑백사진이 눈길을 끈다. 1899년 9월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 기공식 사진으로 촬영한 일자는 1897년 3월22일이다. 갓을 포함한 조선 관리들의 의관이 모두 백색이다. “1895년 10월 미우라 고로를 비롯한 일본인들에게 살해된 명성황후의 국상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증기기관차 모형에서 수증기를 뿜어낸다. 사람이 탈 수도 있었다는 파시 1-4288호 모형을 배경으로 철도박물관을 방문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그 위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 설치됐다. “지구를 가로지른 세 개의 레일과 기차가 보이지요. 철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1894년 6월 28일(음력) 우리나라 철도 역사가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철도교통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역사실. 윤원규기자

■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는?

‘역사실’은 철도의 역사를 보여 주는 공간이다. 증기기관차는 근대의 산물이며 제국주의와 깊이 관련돼 있다. 철도부설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강대국들이 경쟁했던 역사가 있다. 앞에서 봤듯이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은 1900년 7월 비로소 전선이 개통된다. 경인선을 달린 열차의 이름이 ‘모갈’이고 1906년 4월 개통되는 경부선을 달린 열차의 이름은 대한제국의 연호를 딴 ‘융희호’다. 1946년 5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열차 ‘조선해방자호’에 담기 사연이 특별하다. “일제는 철도 고급 기술을 한국인에게는 가르치지 않았어요. 패망해 그들이 모두 일본으로 떠나가 한동안 열차가 멈추게 됐는데 9개월 만에 우리가 기술을 터득해 열차를 달리게 한 것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바꿨던 열차는 누가 발명한 것일까.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인 리처드 트레비식(1771~1833)과 조지 스티븐슨(1781~1848)의 초상을 보며 같은 시대 조선의 현실이 어떠했나 생각해 본다.

1930년 우리나라 지형에 맞게 설계·제작된 파시1형 증기기관차 모형을 어린이들이 관찰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조선에 철도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1877년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기수(1832~?)였다. 1877년 주미 대리공사 이하영은 귀국하면서 움직이는 기관차와 객차 등 정교한 철도 모형을 가져와 철도의 편리성과 중요성을 고종과 관리들에게 알리고 철도 건설을 건의했다. 고종이 철도 건설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1894년 6월 의정부 공무아문에 철도국을 설치하고 1896년 3월 경인선 건설을 결정한다. X자 모양으로 국토를 가로지른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호남선은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나라의 대동맥이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도 철도를 잇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선진국을 상징하는 KTX를 개통한 순간을 기록한 사진을 보며 새삼 한국인의 저력에 감탄한다. 전시실 곳곳에서 가슴 뿌듯한 감동적인 사연과 마주한다. ‘차량실’은 우리나라 철도차량의 발전 과정을 잘 보여 준다. 동력차와 객차, 화차의 모형과 부속, 제작 공구 같은 철도차량 유물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도 흥미롭다. 열차 운전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운전 체험을 하려면 500원 동전을 미리 준비하셔야 해요.” 그러나 동전이 없다. 단돈 500원으로 기관사가 될 기회를 놓쳐 아쉽다. 열차 운전석에 앉으면 속도감을 느껴볼 수 있다니 다시 박물관을 찾을 때 500원 동전을 몇 개 준비해야겠다. 본관 2층으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중앙에 설치된 조형물을 자세히 살펴본다. 레일을 달리는 열차들이 또렷하게 보인다. 미래의 열차는 어떤 모습일지, 현재와 얼마나 달라질지 궁금하다. 특별전시실, 전기실, 시설실, 수송서비스실, 영상실로 이어진다.

야외전시실은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멀찍이 유물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열차 안으로 들어가 살펴볼 수 있으니 체험에 가깝다. “대한민국 철도 거리의 기준점이 되는 지점을 표시하는 ‘철도기점 표지석’입니다. 1972년 2월15일 서울역에 설치했던 것을 2004년 서울역이 신역사로 이전되면서 기존에 사용되던 표지석을 옮겨 전시한 것이지요.” 분단되기 전에는 언제나 갈 수 있었던 평양, 신의주, 나진에 기차로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야외 전시장에서는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파시5형 증기기관차 등 다양한 차량들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자~ 떠나자! 역사와 추억이 숨 쉬는 철도박물관으로

등록문화재인 ‘협궤동차’에 깃든 사연도 재미있다. 1965년 철도청 인천공작창에서 협궤 디젤동차 6량을 제작해 수려선과 수인선은 최대 시속이 55㎞였다. 수원과 여주를 잇던 수려선은 1972년 3월, 수원과 인천을 잇던 수인선은 1995년 12월 폐선됐다. 협궤란 궤간 거리가 표준인 1천435㎜보다 좁은 궤도를 말하며 수인선과 수려선이 762㎜의 협궤 구간이다.

‘비둘기호’ 객차에 오른다. 1959년 서울공작창에서 국산 객차 시범에서 제작한 차량과 같은 차량이다. 1962년 인천공작창에서 제1호차로 제작된 것인데 보통 급행열차로 운행되다가 1967년부터 완행열차 비둘기호로 운행됐다. 차량 내부에는 118개의 좌석이 있으며 고정식 의자와 1열에 3명씩 앉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통일호 객차도 반갑다. “이 차량은 1965년 인천공작창에서 경량객차 시범 차량으로 제작된 것인데 최고 120㎞의 급행열차 통일호로 운행됐던 것입니다.” 등록문화재 제419호 대통령전용객차도 타 볼 수 있다. 광복 이전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이어주던 최고급 침대 객차를 개조해 국가원수 전용차량으로 사용한 것으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사용했던 차량이다. 철도박물관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을 숲처럼 풍성하다. 한낮엔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가을이 왔다. 철도박물관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유원지도 있으니 1호선 전철을 타고 마음에 드는 벗과 아무 때나 찾아도 좋은 곳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이정민 기자 jmpuha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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