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중국에 침몰하는데…법원은 `핵심기술` 中 유출자 `무죄` 판결
국내 법원이 중국 측에 '국가핵심기술'인 조선 기술을 빼돌린 '산업 스파이'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는 등 잇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이 중국에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선박 세계 1위' 한국이 중국의 인력·기술 유출로 조만간 중국에 1위 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 점유율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려 세계시장 점유율이 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387만CGT(표준선 환산톤수·106척)로 작년 동월 대비 27% 증가했다.
이 중에서 중국이 347만CGT(95척)를 수주해 90%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8만CGT, 척수로는 4척을 수주하는데 그쳐 점유율이 2%로 떨어졌다.
한국 조선업계의 월별 수주 점유율은 올해 들어 계속 중국에 밀리다가 지난 7월 40%로 1위에 올랐다가, 한 달 만에 다시 선두를 넘겨줬다.
올해 1∼8월 전 세계 누계 수주는 4207만CGT(1454척)로 전년 동기(3232만CGT·1436척) 대비 30% 증가했다.
이 가운데 중국은 2822만CGT(1015척·점유율 67%), 한국은 822만CGT(181척·20%)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 14% 늘어났다.
지난달 전 세계 수주 잔량은 전월 대비 69만CGT 감소한 1억4378만CGT였다.
국가별 수주 잔량은 중국 7715만CGT(54%), 한국 3902만CGT(27%) 등의 순이다. 전달 대비 중국은 92만CGT 감소했지만 한국은 5만CGT 늘었다.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189.2포인트를 기록하며 작년 동월 대비 9% 상승했으며, 2020년 11월부터 45개월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선종별 1척 가격은 17만4000㎥ 이상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2억6200만달러, 초대형 유조선(VLCC) 1억2900만달러, 초대형 컨테이너선 2억7300만달러였다.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의 LNG 선박은 한국 조선업계의 주력 제품이다. 컨테이너선과 벌크, 유조선 분야에서 중국이 이미 한국을 뛰어넘은 상태다. LNG 선박은 중국 조선업계가 아직까지 한국의 기술력에 미치지 못한 유일한 분야다.
이 때문에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 LNG 선박 국가를 노리는 중국은 한국 조선 산업의 '국가 핵심기술'을 노리고 있는 정황이 여러 차례 포착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조선업계에서 18건의 기술 유출사건이 터졌고, 이 중 15건(85%)이 국가핵심기술이었다. 국가핵심기술이 국가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LNG 선박에 들어가는 '화물창' 품질 제고 기술 등 핵심 기술 2건이 중국 업체에 유출된 정황이 국가정보원에 포착돼 해양경찰청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창은 LNG를 저장하는 탱크로, LNG 선박에서 가장 고난도 제작 기술이 필요한 핵심시설이다. 관련 기술들은 거의 대부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해당 기술은 국내에서 일하던 인력이 중국으로 이직하거나, 중국 업체들에게 선박 건조 자문을 해주는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수사 당국은 보고 있다.
한편, K조선이 자칫 중국에 의해 좌초할 수 있다는 관련 업계의 심각한 우려와는 달리 국가핵심기술을 다른 업체나 해외로 빼돌리는 '산업 스파이'에 처벌은 솜방망이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선 '한번 걸리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지난 6월에는 중국 측에 조선 관련 산업 기술을 중국 측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대형조선소 퇴직자가 1·2심 법원으로부터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의 판단은 중국 측에 유출한 조선 관련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과 영업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난 6월 24일 광주고법 형사1부(박정훈 고법판사)는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전 조선소 직원 A(61)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해 1심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A씨는 자신이 재직 중이던 국내 대형 조선소에서 국가 핵심 기술이자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LNG선 카고탱크 제조기술' 관련 파일 총 52개를 개인 노트북에 저장해 놨다가, 퇴사 후 다른 외국 기업 등에 사용할 의도로 지우지 않고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한국인 숙련 기술자 파견·기술 자문 계약을 맺은 중국 조선 업체 등에서 일하며 빼돌린 기밀 기술 관련 자료를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이에 검찰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한 국가 핵심 기술에 해당하는 'LNG선 카고탱크 제조기술' 관련 자료를 A씨가 무단 보관, 해외 기업을 위해 사용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가 중국 조선소 측에 넘긴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에 해당하지 않고, 빼돌린 B사의 정보도 영업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도 "중국기업에 제공한 기술은 B 회사가 외국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용권을 취득한 기술로, 외국의 원천 기술에 불과해 국가 핵심 기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영업비밀 누설 부분에 대해선 "유출 자료가 경제적 가치를 가진 비공개성 자료라는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B사가 해당 자료를 '비밀'로 유지·관리했다고 볼 증거가 없어 영업비밀을 유출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데에는 '솜방망이 처벌'이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마다 산업기술 유출 수법이 한층 교묘해지는 반면, 수사 당국이 어렵게 공조 수사를 통해 산업 스파이를 잡아봐야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기업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로 인해 국내 산업 경쟁력의 저하는 물론,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법조계와 정치권의 위기 의식에 대한 각성과 함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등의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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